[오피니언] 내가 쌓은 담장을 내가 허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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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봉(시카고한미상록회장)

 

무심코 youtu.be를 열었는데 옛날에 방영 되었든 사극(史劇) 동이가 눈에 들어 왔다. 내가 지난날 이 연속극을 보던 감명이 살아나 다시 열어 보게 되었는데 열린 부분은 공교롭게도 권력을 내려놓고 사가(私家)로 나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숙빈이 담장을 허무는 장면이었다. 그녀가 허물려고 하는 담장은 왕족의 세상과 보통의 세상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란 새로운 목적, 그 내면을 처음 이 사극을 볼 때는 깊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기도 했다. 순간 내 눈에서 눈물이 빙글 돌아 노안(老眼)을 적셔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제일 높은 곳을 향하여 전력 경주하는 궁궐이란 별천지의 삶, 그 속에서 어렵게 얻어 진 기득권을 모두 내려놓고 자신의 힘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기위해 담장을 허물고 세상과 하나 되는 공평의 삶을 꿈꾸는 이상(理想)이 너무 신성한 충격으로 나에게 심령을 울려왔다.

요즈음 세상은 너무도 높은 담장으로 서로 막이가 되어있어 사고(思考)의 공유는커녕 아픔을 나눈다는 생각은 잊어버린 옛이야기가 되었다. 심지어 자기들 말로는 한분뿐인 하나님이라고 가르치며 각자가 및는 하느님이 다르다는 것을 목사와 교회가 증명을 하고 있는 실증이다. 천주교단 안에서도 정의구현 사제단이 알고 있는 하느님은 정의란 명분으로 공평을 잊어버린 하느님처럼 특별나다. 개신교회는 말할 것도 없다. 수많은 교단이 말로만 한분뿐이신 하느님이지 믿음의 궁극은 서로 다르고 얼마나 다르면 범 교단 범 교회란 말이 생겨났겠는가!

하느님이 한분이고 진리가 하나고 믿음이 하나이면 가르침도 하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목사들이 모이면 교단의 위세를, 교인들이 모이면 하느님의 진리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교회 목사자랑(설교의 능력) 교회건물 자랑 신도 수 자랑이다. 그리스도의 세계가 거리낌 없이 타 교회 교인들의 수평이동을 위한 심혈을 기우릴 정도로 오염되어있다. 그 속의 모든 사람이 이기의 담장 안에 갇혀 살면서 담장 밖의 세상을 탐하는 의식구조의 변화는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이런 세상에 나의 영역이 구분되어 살고 있는 현실이 나의 세상 삶이다. 그리고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세상을 본다. 내가 본 세상을 나의 잣대로 재단(裁斷)하고 작다 커다 하며 잘잘못에 분노하고 있는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볼썽사납다. 이런 혼란은 나뿐 아니라 우리 동포사회 어디서나 나타나고 있다. 그중 심각하게 받아 들릴 수밖에 없었던 지난 3.1절 이야기로 끝을 맺어야 하겠다. 그 이유는 3.1절이야 말로 대한미국의 정체성을 대변한다고 믿고 있는 나의 의식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경일에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취임사가 있기 마련인데 취임사 내용과 대통령의 행보가 너무나 상반되었다는 실체가 듣는 귀를 아프게 했다. 그 중 첫째는 태극기의 창제와 그 기원을 언급하였으니 태극기의 가치를 잘 알고 있는 대통령으로 자국에서 개최하는 동계올림픽 입장식에 자국선수들이 태극기를 들지 못하게 했다는 사실이고 둘째는 독도가 일제가 침탈한 한국영토로서 일본주장에 의하면 아직까지 반환치 않은 분쟁을 획책하는 지역임을 알면서 올림픽에 사용된 반도 기에는 독도를 누락시켰다는 것이다. 하긴 그 긴 독립선언문 원본을 암송으로 낭독하는 감격도 있었지만 격에 맞지 않는 격려사를 듣는 거북함도 있었다. 기념일에는 누가나 간략하게 기념사는 할 수 있지만 격려사는 아니다. 격려할 대상이 없기도 하지만 격려사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위로와 용기를 북돋워 주는 말씀을 의미함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