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익숙해진 삶

413

김무웅(자유기고가/글렌뷰)

우리 모두에게는 크건 작건 간에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각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모두가 관념(觀念)이란걸 갖고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어떠한 조건 아래 있던지, 관념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것이다. 두뇌가 명석했던 사람이건, 그렇지 못한 사람이건, 다 같은 관념을 가지고 있다. 이 단어는 불교 용어에서 부터 온 말이다. 조금 어렵지만, 마음을 가라앉혀 진리를 관찰하고 사념(思念)하는 일이란 뜻이다. 우리 모두는 어려서 배우게되는 모국어란게 있다. 여기서 모국어 (母國語) 라 함은, 말 그대로 엄마로 부터 배우는 말을 말 한다. 엄마가 무슨 말을 쓰느냐에 따라서 그걸 배우게 된다. 물론 억양에서 부터 숨겨진 말의 의미까지 말이다. 각자가 사용하는 언어는 사용자의 생각이 숨겨져 있다.
인간은 성장 해가면서 자신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자기만의 생각으로 “틀”을 만들어 가며 살게 된다. 물론 언어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일정한 격식이나 형식 속에 갇혀 살게 되면,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것이 되어 버려서 현실과의 거리가 멀어 지게된다. 이런것의 결과 중에 하나가 신흥종교 탄생이 되는 거다. 영적인 허세에 빠져 있기에 자기들만이 세상을 구할 수가 있고, 인간의 영혼을 구 할 수 있다는 극단적인 관념 속에 빠지게 된다. 허구의 진리를 왜곡해서 인식을 한 사람들이 모였기에 그들은 옳고 그름을 모른다.
세상은 여전히 눈에 보이는 연결이라던가, 인간 관계를 중요시 한다. 친구가 많고, 아는 사람이 많다고 풍요로움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다. 주변에 사람이 많으면 늘 불안하고, 불만에 사로 잡혀 살기가 쉽다. ‘혼자’보다는 ‘함께’ 라는 것이 삶의 질(質)을 높이기도 하는데, 시대가 쉽게 허락을 하지 않는다. 혼자만의 공간을 좋아 하고, 뭐든지 혼자서 즐기려 드는 사람이 늘어 가고 있는 세상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름이 있다면, 환경에만 순응하며 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남녀가 같이 사는 것을 순리로만 알았으나 지금은 다르다. 여러가지 새로운 조건하에서 혼자 사는 것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 가고 있다.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스웨덴 같은 나라에서는 혼자 사는 비율이 40%가 넘어선지가 이미 오래 전이다. 미국은 성인중에 거의 30%가 독신이라는 통계도 나와 있다. 한국 역시 급격한 고령화와 젊은 층의 결혼 기피로 인하여 1인가구가 점점 늘어 나고 있다. 이제는 완벽한 싱글이라는 말도 생겨 났다. 같이 밥을 먹는 식구의 개념이 점점 혼밥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이것이 외로움이라던가, 고독이란 삶의 변화를 가져다 준다.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싱글시대에 무엇이 옳고 그름인지를 가려 내기가 점점 어려워 진다는 거다.
미국에 있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출발을 하는 장거리 도보길인 죤 무어 트레일 이라는 358 km의 길이 있다. 이미 길들여진 길을 따라 걷게 되어 있다. 이 길을 걷고자 하면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그 교육과정 중에 길이 아닌 곳을 세사람 이상은 걷지 말라는 경고를 받게 된다. 그러면 다시 새로운 길이 생기게 되어 그 길을 걷고자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혼돈을 줄 수 있다는 거다. 우리의 삶도 길들여진 삶의 길을 걷게 되는게 안전 하다는 거다. 세상에는 다수가 하는 것이 표준이 되는 거다. 유별나게 세상을 사는게 아니라, 모두가 익숙해진 삶의 길을 따라 가는게 행복의 비결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