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 무력충돌 재개 후 “종전 MOU 끝난 것 같다” 폭탄 발언
지지부진한 협상 상황에 강한 불만 표출한듯
미·이란 모두 전면전은 부담…압박 전술 관측도
(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전 이란 최고지도자의 장례식 와중에 호르무즈 해협 통항을 둘러싸고 미국과 이란 간 무력 충돌이 재개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종전 양해각서(MOU) 무효화를 암시하는 발언을 해 그 여파에 관심이 쏠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 만난 자리에서 종전 양해각서가 “끝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이란을 향해 “그들과 거래하고 싶지 않다. 그들은 지긋지긋한 사람들(Sick people)”이라고도 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대표단이 이란과 대화하는 것을 허락할 수 있다고 여지를 남기면서도, “그들과 거래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며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지난달 17일 이란과의 종전 양해각서 체결 후 후속 협상에서 진전이 없는 상황에 대한 강력한 불만의 표출로 볼 수 있다.

그동안 양국 협상단은 스위스에서 고위급 회담과 실무회담, 카타르 도하에서 실무협상단 간의 간접 회담을 진행했으나 양해각서 이행을 둘러싼 이견만 확인했을 뿐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이란은 종전 최종합의를 위해 양해각서 제1조(모든 전선에서 군사작전 즉각 영구 종료), 제4조(해상 봉쇄 해제와 이란 근처에서 군대 철수), 제5조(호르무즈 해협 개방), 제10조(이란 석유 수출 허가 발급), 제11조(이란 동결 자산 해제)가 충실히 이행되어야 후속 협상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반면 미국은 이란의 이러한 태도를 합의 외적인 이슈를 연계하는 지연 전술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이란은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무력 충돌 상황과 관련 양해각서 제1조 위반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고, 제5조와 관련해서는 미국이 이란에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을 부여했다는 논리로 자신들이 정한 항로를 벗어나 해협을 통과하려는 선박을 공격해왔다.
하메네이 장례식 와중에 벌어진 미국과 이란의 이번 무력 충돌 역시 이런 논리에 근거한 이란의 유조선 공격이 촉발했다.
하메네이 장례식으로 후속 협상이 사실상 중단된 가운데 60일로 명시된 협상 기간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0일이 흘렀고, 이런 와중에 무력 충돌까지 벌어지자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미 재무부가 양해각서에 명시된 이란산 원유 판매 허가 면제를 전격 취소한 것도 이런 해석의 배경이 되고 있다.
결국 이란 외무부가 이날 성명을 통해 호르무즈 해협 내 자국의 통제권 침해와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략을 거론하면서 “휴전 협정의 핵심 조항이 사실상 무력화됐다”고 선언한 데 이어, 트럼프 대통령까지 종전 양해각서가 끝난 것 같다고 발언하면서 전면전이 재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다만,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폭탄 발언이 판이 틀어질 때마다 테이블을 걷어차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상대가 양보안을 들고나오면 극적으로 복귀하는 과거의 모습을 근거로 일종의 압박 전략일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실제로 미국이 다시 이란과의 전면전에 돌입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지난 2월 말 이란을 공격한 뒤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글로벌 유가 폭등, 지지율 하락 등 치명적인 부메랑을 경험한 바 있기 때문이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전쟁 장기화에 따른 유가 상승이 물가를 끌어올려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장기전은 정치적 부담이다.
미국과의 전면전은 장기간의 경제 제재로 이미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이란에도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치명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부담스러운 시나리오다.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