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거지와 가난은 사촌 간이다”

1538

서도권 목사(크로스포인트교회 담임)

부자라는 말은 시대와 지역, 사회 가치의 변천에 따라 다르게 정의합니다. 옛 조상들은 천석꾼 혹은 만석꾼 하여 쌀 수확량을 부자의 기준으로 삼았으나 현재는 살고 있는 아파트의 크기, 타고 다니는 자동차의 브랜드, 보유하고 있는 채권의 가치 등을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밀리언 에어(millionaire)’라 하여 금융 자산이 백만 달러 이상 되는 사람들은 부자라고 합니다. 또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Old Money) 으로 부를 누리는 사람도 있고, 자신이 노력하여 모은 재산(New Money)으로 부자가 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얼마 전 발표된 포브스 잡지는 가구당 평균 수입이 $58,500.00이 되면 세계 평균임금과 비교하여 상위 0.2% 내에 든다고 했고, 일 년 수입이 $40,000.00은 0.6%, $20,000.00은 4%, 그리고 $10,000.00 수입만 되도 상위 16%안에 속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갤럽의 조사는 더 충격적 이여서 세계 인구의 22%가 하루에 $1.25로 살아가고, 34%는 우리의 커피 한잔 값인 $2.00로 하루를 산다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는 ‘부자와 나사로’에 관한 말씀이 기록되어있는데, 이름을 알 수 없는 한 부자가 당시 임금들이나 입는 최고의 옷감인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매일 새로운 친구들과 주지육림(酒池肉林)에 호화로운 파티를 즐기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 집 문간에 ‘허리띠를 양식’ 삼아 병들어 누어있는 천덕꾸러기 거지 나사로를  아주 불공평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거지와 가난은 사촌 간’이라고 했던가?, 심지어 개들이 와서, 애교를 부리며 꼬랑지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핥아 아픔을 가중시켰다고 누가는 기록 하고 있습니다. 인색한 부자는 대문을 드나들면서도 나사로를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재산을 많이 가진 것이나, 매일 호화로운 파티를 즐기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가난한 자를 돌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은 죄입니다.

시작과 달리 이야기의 끝은 아주 공평합니다.  두 사람이 죽음의 관문을 지나 현세와는 분명하게 다른 곳에 도착했습니다. 부자는 불구덩이 속 지옥으로 가고 나사로는 천사의 ‘에스코트’를 받아 천국의 아브라함의 품으로 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는 오 갈 수 없는 늪이 있었습니다!  말씀을 알고 있지만 순종하지 않는 바리세인들과 서기관들을 부자로, 가난하고 병든 거지로 상징된 나사로는 세리와 죄인들의 모습입니다.

지옥 불속에서 고통 받던 부자는 멀리 아브라함과 나사로를 알아보는 지각, 뜨거 움과 고통을 아는 감각, 세상에 있던 일들을 기억하는 의식, 자비를 구하는 양심, 형제들을 염려하는 배려 등이 또렷이 있었습니다.  불속에서도 부자는 주제파악을 하지 못하고 나사로에게 물을 찍어다 혀를 서늘하게 해 달라, 세상에 있는 형제들에게 가서 이곳에 오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했으나 모두 거절당합니다. 부자가 지옥에 간 것은 세상에서 누렸던 부 곧 공평하게 상쇠 시키기 위함이 아니요,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돈(money) -. 소유가 아니고 태도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돈이나 재산이 많은 부자를 저주도 책망도 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축복도 하늘나라를 보장하는 약속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돈을 사용하는 태도에 대하여 바울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 6:10)고 말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