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내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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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룟 유다는 군사와 하속들을 이끌고 예수님을 잡으러 왔습니다. 이때 주님께서 그들을 향해 “내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무리들은 뭔가 신비한 힘에 밀려 속수무책으로 땅에 쓰러졌고, 저항할 수 없는 강한 위엄에 눌려 주님 앞에 절하듯이 엎드렸습니다. 도대체 “내로라”는 말에 어떤 힘이 담겨 있는 걸까요? “내로라”는 헬라어로는 “에고 에이미”인데, 히브리말로는 “여호와” 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인 겁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하나님 되심을 무리들에게 선포하셨고, 무리들은 그 거룩한 이름이 뿜어 대는 장엄한 신성에 눌려 예수님 앞에 절하듯이 엎드러지고 만 겁니다. 누가 하나님을 붙잡을 수 있겠어요. 이 장면을 통해, 주님께서 무리들에게 잡혀 가신 것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 목적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신 잔을 마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바로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를 향해 전혀 주저하지 않고 성큼성큼 다가가신 겁니다. 주님의 행동 속에서 우리를 향한 주님의 무한한 은혜와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주님께선 소유하고 계신 우주에서 가장 큰 능력을 조용히 포기하신 겁니다. 스스로 코와 입을 막고 숨을 참는다고 생각해보세요. 더 이상 견디기 힘들면 당연히 막고 있던 손을 뗍니다. 그럴 능력이 있고 또한 그래야만 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선 우리를 위해서 그 능력을 포기하신 겁니다. 그러니 숨이 멈추는 순간까지 얼마나 갈등하셨을까,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은혜가 우리에게 임한 겁니다. 그런데도 주변을 둘러보면, 성도들이 주님의 은혜를 시장에서 물건 살 때 거저 받은 사은품처럼 취급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주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주님과 아무 관계없는 것처럼,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꽤 많은 겁니다. 그래선 안 됩니다. 주님의 은혜를 늘 가슴에 새기고,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겠다고 결단하고 실천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잡으러 온 무리들에게 또 한 번 “내로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내로라” 했으니 나를 찾거든 내 제자들이 가는 것을 용납하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내로라”의 의미를 모르면, 잡으러 온 무리들에게 내 제자들만큼은 살려 달라고 간청하거나 부탁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주님께선 하나님의 권세로 명령하고 계신 겁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 하나도 잃지 않았습니다.”라는 말씀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권세를 사용하고 계신 겁니다. 결국 주님의 제자들은 다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선 자신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는 일도 사용하지 않으신 하나님의 권세를 제자들을 구하는 일에는 100% 사용하고 계신 겁니다. 여기서 소중한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은 주님을 믿고 구원받은 자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져 주시는 분이십니다. 말씀 몇 군데만 찾아봐도 이 진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8장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약속해주셨습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니 이 말을 꼭 기억하거라.” 히브리서 7장 25절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가 천국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를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하고 계시다고 증거합니다. 또한 주님께선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고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자들이 하나도 낙오하지 않고 모두가 다 천국에 도착할 수 있도록 돕고 계십니다.
주님께선 지금도 시험과 유혹으로 우리를 공격하는 악한 세력들을 향해, “내로라!”고 선포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주님의 말씀, “내로라!”를 가슴에 새기고 믿고 의지해 어떤 상황에서도 승리의 찬송을 부르는 백성들이 다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