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네 마음의 그릇이 얼마나 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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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용 목사(시카고 기쁨의교회)

중국의 한 현자의 제자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온 상태로 스승을 찾아왔다. 너무 화가 나고 억울해서 참을 수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스승에게 물었다. 그 때 스승은 “네 마음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가져오라” 했다. 그러자 제자는 투덜거리면서, “어제 화가 나서 술을 마셨는데, 그 때 술을 마셨던 술잔을 가져 오겠다”고 말하면서 작은 술잔을 가져왔다. 스승은 바로 그 술잔에 물을 떠 오라고 했다. 제자가 물을 떠오니, 스승은 그 작은 술잔에 한 움큼 소금을 넣었다. 그리곤 “마시라”고 명령했다. 제자는 그 물을 마시자마자, 인상을 쓰고 물을 뱉으면서 “스승님, 이렇게 쓰고 짠 물을 어떻게 마실 수 있습니까?”라고 원망했다. 그러자 이번에 스승이 그 물을 호수에 버리라고 말했다. 제자는 그대로 물을 호수에 버렸다. 이에 스승은 “이제 다시 그 호수의 물을 떠서 먹어 보라”고 말하고는, “맛이 어떠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제자가 말했다. “이제 더 이상 짜지 않습니다.” 바로 그 때 현자인 스승은 이렇게 충고해 주었다. “네 마음의 그릇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서 네 안에 있는 고통과 아픔의 크기도 달라지느니라.”

 

인간은 모두 고통과 아픔의 문제를 지니고 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그 고난이 작게 느껴지고, 다른 사람에게는 그 아픔이 크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 이유는 바로 현자의 말대로, 우리 각자가 가진 마음의 그릇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음의 그릇이 작으면 외부로부터 들어온 아픔과 고통이 너무도 아프고 고통스럽게 느껴지고, 반대로 그릇이 크면 그리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성경 누가복음에 보면,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눅 11:34-35)고 증거한다. 여기서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마음을 말한다. 따라서 이 구절은 “내 마음이 착하고 바르면 우리 삶이 착하고 바를 것이고, 만일 악하면(본문에 ‘나쁘면’의 뜻은 원래 헬라어 원어로 ‘포네로스’라는 뜻으로 ‘악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음) 우리의 삶도 악하고 죄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라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다. 그러면서 35절에서 “그러므로 네 마음이 악하지 않도록 하라”고 충고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신앙 안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너무도 중요하다.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인생뿐만 아니라 믿음의 삶도 힘들고 어렵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마음이 어둡고 악하며 죄로 가득 차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마음의 크기를 키우고 넓이를 넓히며 깊이를 깊게 만드는 훈련도 신앙의 삶 가운데에서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넓은 호수와 같은 마음을 가지게 된다면, 어떠한 고난이 와도 우리는 모두 품을 수 있을 것이다. 깊은 바다와 같은 마음을 가지게 된다면, 우리는 어떠한 아픔이 와도 참아내고 인내하며 연단과 소망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고, 큰 하늘과 같은 마음을 가지게 된다면, 어떤 인생의 비바람과 풍랑이 몰려와서 이겨내고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여러 모로 어려움과 힘든 일들이 많은 시기이다. 직장을 잃은 사람도 있고 가족을 하늘로 떠나 보낸 이도 있다. 건강을 잃어 괴로운 나날을 보내는 사람도 있으며 자신감과 믿음을 상실해 사람도 만나지 못하고 세상에도 나가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외부의 문제를 따져 보기 전에 먼저 우리 안에 마음을 돌아보길 바란다. 지금 나의 마음의 그릇은 어느 정도인가? 현재의 문제를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인가? 아니면, 어떠한 문제와 고난에도 쓰고 맵고 짠 고통을 줄 수밖에 없는 작은 그릇인가? 마음을 넓히고 크게 만들며 깊이가 있도록 하라. 마음에 담겨진 어떠한 고통과 아픔의 문제에도 의연히 대처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큰 그릇의 마음을 만드는 우리 모두가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