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국 클래식 음악의 독특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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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희(인디애나 음대 반주과 객원교수)

1890년대 체코 작곡가 드보르작은 흑인 멜로디가 미국 음악의 미래라고 하였지만, 멜로디와 표현력이 풍부한 흑인 음악이 미국의 클래식 음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압도적으로 백인 중심의 음악으로 발전했다. 1619년에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이 노예로 미국 땅을 밟았을 때 그들의 고유 음악도 함께 왔다. 4세기가 지난 지금, 흑인 미국 음악의 중요성은 미국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흑인 고유 음악이 어떻게 발전했고, 다른 음악들과 섞이며 어떻게 성장했는지에 관한 논의는 끊이지 않고 있다.

아프리카 노래와 춤에서 비롯되어 흑인 영가, 래그타임, 블루스에서 재즈에 이르기까지 흑인 음악은 미국의 클래식 음악과 깊은 관계가 있다. 케인 웨스트, 켄드릭 라마 등의 가수들이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하는 것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에 있는 흑인들이 클래식 오케스트라 단원인 경우는 드물다. 2014년 미국 오케스트라 리그의 조사에 따르면 오케스트라 단원의 흑인 비율은 2% 미만이며, 흑인 지휘자는 4.3%, 그리고 작곡가는 거의 백인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미국의 클래식 음악이, 특히 20세기 초에 발전하면서 브람스와 바그너의 음악으로부터 내려온 유럽적인 음악으로 남아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미국 음악의 역사에 관한 많은 책을 쓴 조셉 호로비츠는 2년 전 미국 학자라는 잡지에 실린 ‘신세계 예언’이라는 글에서 19세기 후반 미국 작곡가들이 아프리카계 미국 음악의 영향을 거부했기 때문에 진정한 미국 음악이 뿌리내리지 못했다고 말한 바 있다. 흑인 음악을 수용한 백인 작곡가 조지 거슈윈과 1930년대에 성공을 거둔 소수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곡가들이 관심을 기울였지만, 빠르게 퇴색되었다.

흑인 작곡가들의 매장된 역사는 1890년대 사무엘 콜리지 테일러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흑인운동 지도자 윌리엄 듀보이스와 흑인 바리톤 가수 겸 작곡가 해리 벌리로부터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뿌리를 이어받은 영국 출신의 혼혈 작곡가이다. 로버트 나다니엘 데트, 윌리엄 그랜트 스틸, 플로렌스 프라이스, 윌리엄 도슨 등의 미국 흑인 작곡가들은 1930년대에 극찬을 받았지만 현재는 저평가 되고 있다. 도슨의 흑인 민속 교향곡은 1934년에 필라델피아 음악원과 카네기 홀에서 연주되었을 때 곡 중간에 관객들이 박수 갈채를 보냈다고 한다. 그 당시 교향곡 중간에 박수를 치는 것은 드문 일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곡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도슨은 ‘나는 베토벤이나 브람스, 프랑크, 라벨의 흉내를 내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 흑인이 되려고 노력했다. 교향곡이 초연될 때 내게 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칭찬은 백인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클래식 음악 관련 기관들이 인종적으로 편향되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국 백인 작곡가 버질 톰슨과 아론 코플랜드는 흑인 음악에 대해 평가했는데, 톰슨은 흑인 영가를 포함한 미국 민속 음악이 근본적으로 백인에게서 유래되었다고 주장했다. 코플랜드는 클래식 음악이 재즈를 사라지게 할 것이라고 했으며, 거슈윈의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 유럽 작곡가 라벨, 미요, 스트라빈스키는 흑인 음악, 특히 재즈를 인정하고 자신들의 음악에 접목시켰다. 1930대에 잠깐의 시간을 가졌던 도슨과 소수의 흑인 미국 작곡가들의 작품을 듣기가 어려워졌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노예가, 흑인 영가, 재즈 등이 미국 클래식 음악에 깊게 뿌리를 내렸다면, 오늘날과는 다른 미국 특유의 클래식이 발전되지 않았을까. 미국 클래식 음악의 운명에 대해 좀더 관심을 갖고, 인종에 관계없이 공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