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벗어야 할 것, 입어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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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JongHyung-1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을 지키기 위해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거짓된 것을 벗어버리고 참된 것을 입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순간의 거짓된 행동으로 안디옥 교회의 하나됨을 위협했습니다. 회심한 이방인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안디옥 교회를 방문한 베드로는 그들과 식사 교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에서 유대인 출신 성도들이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피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방인 출신 성도들은 헷갈렸을 겁니다. 조금 전 자기들과 식사하며 사랑의 교제를 나누던 베드로의 모습이 진짜인지, 아니면 유대교 성도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들을 피한 행동이 진짜인지 정말 헷갈렸을 겁니다. 베드로의 이 외식된 행동으로 인해 이방인 출신 성도들은 큰 상처를 입었을 겁니다. 베드로 같은 영적 거인도 깨어 있지 않으면, 얼마든지 사탄의 도구가 되어 교회의 연합을 해칠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초래한 위기를 지혜롭게 수습한 인물은 바울이었습니다. 바울은 베드로의 거짓된 행동을 보고, 지체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 앞에서 베드로를 꾸짖었습니다. 베드로는 믿음의 대 선배였습니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베드로를 꾸짖기가 참 어려웠을 겁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지금 바로 거짓을 바로잡지 않으면, 이방인 출신 성도들이 영적으로 흔들릴 수 있다고 판단한 겁니다. 주님 영광을 위해 참되게 행동한 바울 때문에 안디옥 교회는 하나됨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마귀가 좋아하는 분노는 벗어버리고 거룩한 분노를 입어야 합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연승을 거두고 돌아오는 다윗을 향해 백성들은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고 노래했고, 이 소리를 들은 사울은 크게 분노합니다. 사단은 이 분노를 도구로 삼아 나라의 인재인 다윗을 도망자로 만들었고, 이스라엘을 분열시켰고, 다윗을 쫓는데 국력을 낭비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잘못된 분노는 공동체를 위기에 빠뜨리고 마는 겁니다. 반면 거룩한 분노는 공동체를 하나로 세웁니다. 다윗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을 만나러 전쟁터에 갔다가, 이스라엘을 조롱하고 있는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을 보게 됩니다. 이때 다윗은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길래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느냐.” 하며 분노합니다. 이 거룩한 분노를 가지고 다윗은 골리앗과 맞섰고 승리합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사기가 충천해져서 하나로 똘똘 뭉쳐 블레셋 군사를 물리쳤습니다.
더러운 말을 벗고, 선하고 은혜로운 말을 입어야 합니다. 사울에 쫓기는 중에도 다윗과 그 일행은 나발의 종들과 가축들을 지켜줍니다. 양털 깎는 축제 때, 다윗은 사람들을 보내 나발에게 물질적 후원을 청합니다. 이때 나발은 아주 고약한 말을 퍼부었습니다. “다윗이 누구냐. 자기 주인을 버리고 도망간 종 아니냐. 나는 절대로 내 물과 내 먹을 것과 내가 잡은 고기를, 근본도 없는 놈들에게 줄 수 없다.” 이 모욕적인 말을 전해들은 다윗은 분노해서 군사를 이끌고 나발을 향해 달려갑니다. 나발의 가족 공동체는 일시에 사라질 수도 있는 큰 위기를 맞은 겁니다.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은 선한 말로 위기에 빠진 가족을 건져냅니다. 하인에게 사건의 전말을 전해 듣자마자, 아비가일은 선물을 준비해 다윗에게 나아가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싸우시니, 하나님께서 주의 집을 든든히 세워주실 겁니다. 나발은 주께서 손수 복수할 인물도 못되니 참으셔서, 장차 왕이 되셨을 때 이스라엘 백성을 친 일로 마음에 부담이 없도록 하세요.” 다윗은 아비가일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며 그녀를 칭찬합니다. 아비가일의 선하고 은혜로운 말이 가족 공동체를 구해낸 겁니다.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그럴 때 허망함과 방탕함으로 지어진 옛사람을 벗고,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만들어진 새사람을 입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