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성공이라는 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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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용 목사 시카고 기쁨의 교회

미국 80-90년대 항상 이슈가 되었던 가수 마돈나가 다음과 같은 고충을 토로했다. “(무대에 서면) 내가 특별한 사람임을 깨닫지만, 또 다른 무대에 서면 내가 평범하고 시시한 사람이 된다고 느낀다. … 이런 일이 반복되고 또 반복된다. 고만고만해질지도 모른다는 끔직한 공포심이 오히려 내 인생을 움직이는 힘이다. 그런데 언제나 그 공포가 나를 몰아붙이고 또 몰아붙인다. 이미 대단한 사람이 되었건만 여전히 나는 대단한 사람임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이런 나의 싸움은 끝이 난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여자 가수가 자신의 성공이 순식간에 사라질 것을 늘 걱정하며 살았다고 고백한다.

지난 주, 한국에서 “반갑구나, 반가워요”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냈던 유명 개그맨 조금산씨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최근에는 그 유행어가 모 드라마에 재등장하여 새롭게 회자가 되었고 그 덕분에 다시 몇몇 TV 프로그램에 나오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관심이 그리 오래 가지 못했고, 그는 전부터 겪어 아픔과 고통을 모두 희석하기에는 다시 얻은 관심이 충분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인간 생의 목적은 솔직히 말해 성공일 것이다. 그런데 그 성공이 때로는 인간을 창조한 하나님보다 우선시 되는 우상숭배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인생을 잘 살기 위해 성공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성공하기 위해 밥 먹고 일하고 시간을 투자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성공이 우리의 삶을 모두 집어 삼키고 있다.

기독교 안에서 우상숭배를 연구하면서, 다른 우상들은 대체도 인간 밖에 존재하는 어떤 대상이나 외부의 무형적 실체로 나타나지만, 성공이라는 우상은 최종적으로 자기 자신이 된다는 매우 특이성을 가지고 있다. 곧 성공의 우상을 좇아가면, 나중에는 자기 자신이 우상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공이라는 우상은 인간의 본질을 더욱 심각하게 파괴한다.

성공은 인간의 정신적 마약이다. 그런데 그 약효가 빠르게 사라지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빨리 성공이라는 마약을 복용하려고 한다. 그 간격이 점점 줄어 들고 인간은 점점 하나님의 형상과 멀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공”이라는 인간의 우상을 신앙적으로 잘 다루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열왕기하 5장에는 아람이라는 나라에 매우 뛰어나고 존경 받는 나아만 장군이 있었다. 그런데 성경은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왕상 5:1)고 증거한다. 곧 나아만 장군은 성공한 자이지만, 걸어 다니는 죽은 자임을 보여주는 말씀이다. 곧 성공을 우상으로 추구하는 인생은 양극단적인 정체성을 가지게 됨을 보여준다. 하나님 머리 위에 존재하는 왜곡된 신이 되는 동시에, 먼지와 티끌보다도 못한 존재가 될 것이라는 불신앙적인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때 하나님이 나아만 장군의 인간적 온전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거들떠 보지도 않는 노예 소녀를 통해 더럽고 보잘것없는 요단강에서 7번 몸을 씻으라는 명령을 한다. 나아만 장군은 분노하고 거절한다. 세상에서 성공한 자신이 그런 미천한 여자 아이의 이야기를 그대로 따르는 것도 용납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럽고 추한 요단강에서 몸을 씻는 것 또한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저히 따를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을 따랐을 때, 나아만 장군은 치유를 받게 되었다. 그것은 곧 성공의 우상을 따르는 병자와 같은 정체성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구원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성공이라는 우상에 빠져 있는 우리가 구원 받기 위해서는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를 기억해야 한다. 성공은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이다. 아무리 수고하여 창고의 성공의 물질을 쌓아도, 하나님이 막으시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어리석은 자들을 선택해 성공했다고 자신하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겸손한 자에게 참된 성공의 길을 알려 주시리라 믿는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바른 성공을 훈련과 연단, 오래 참음과 인내로 허락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