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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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봉 한미상록회장(시카고)

 

사람이 자신(사람)의 한계를 가름할 줄 아는 분이 있다면 매우 지혜로운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대개가 자신의 한계를 가름하지 못하기 일쑤다. 요즈음은 그 한계가 미련할 정도로 심각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각박해지는 세상살이가 그 미련함에서 기인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미국에서는 총기를 규제하지 못함으로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총기사용의 미숙이나 남용 혹은 관리 소홀에서 비롯된 사고의 수는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빈번하다. 그런데도 총기를 규제하지 못한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시민의 기본 권리를 합리화하여 빈번해지는 총기 위협으로부터 스스로가 무장하여 그 위협을 방어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생각해보면 참 어리석다. 격발된 총탄은 총기를 소유한 사람이라 해도 사람의 능력으로는 날아오는 총탄을 피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안다면 무장으로 무력을 방어하지 못함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날아오는 총알이 자신을 피해가 주지 않으면 지신을 향해 날아오는 총탄을 사람의 능력으로는 어떤 수단으로도 피할 수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이 생각은 현대사회의 관조요 진리이다. 정당한 공격은 무력이 아니어도 화해의 몸짓으로 방어가 가능하지만 숨어서 공격해오는 현실에서는 총탄보다 훨씬 위력이 떨어지는 화살도 피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실감한다면 총기 소유가 자신을 지키는 능사가 아니란 사실도 깨달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안전한 방어의 수단은 공격당할 빌미를 재공하지 않는 행위이다. 그 행위는 힘의 과시가 아니라 서로가 하나 되는 공감의식과 공존의 필요를 분담케 하는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는 마음일 것이다. 서로 사랑을 느낄 수 이도록 봉사하고 베푸는 삶이 조화를 이루고 한발 더 나아가 서로에게 헌신한다면 평화의 화음이 울려 퍼질 것이다.

사람의 이기적인 욕망은 통재가 불가능하므로 전혀 체험해보지 않은 미래의 세계, 여기서 더 나아가 사후의 세계를 두고도 갈등하며 믿음이란 가정을 앞세워 상대를 살상하는 종교가 창궐하고 있는 현실을 우리가 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진정 두려운 삶이다. 이러한 지구촌,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는 내 등 뒤에서 참세보다 더 조잘 되며, 때로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며 즐겁게 뛰놀면서 나를 행복하게 만들기도 하고 염려에 빠지게도 하는 두 손녀가 있다. 이 아이들은 이제 겨우 큰아이가 4살이고 작은아이가 두 살 반, 이 아이들은 아직 욕망이란 것이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고작 욕망이라 해봐야 동생이 가진 것을 탐하면서 지 애비나 내 눈치를 살필 정도다. 사실은 이런 아이들의 행복지수도 나의 가늠 밖에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기적 욕망에 빠진 어른들은 사건과 사물을 분별하는 지혜는 성장하지 못하고 마치 동생의 소유를 소유하려하고 동생을 지배하려 하는 것처럼, 세상을 소유하려하고 세상을 지배하려하는 야욕만 성장하는 것 같다.

이런 생각에 침몰될 때 필자는 오래 전 자작시 “터져버린 풍선” 암송해보곤 한다. 내용이 간단해 유일하게 암송하는 자작시이기도 하지만 욕망에 빠진 자신을 추스르는 절규였기 때문이다. 시의 내용은 “큰 것이 좋아 자꾸 불었지 / 그러다 풍선은 터져버렸다 / 입술에 붙어있는 풍선 조각이 / 탐욕의 잔재를 일깨워 준다 / 풍선 터지는 소리와 함께!” 그렇다 절제하지 못한 나의 욕망의 풍선을 얼마나 많이 터뜨렸는지 알 수 없을 정도일 때 나는 이렇게 절규를 토했다. 세상은 무력으로 평화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보여주고 무력에 의한 희생으로 연기하고 있지만 지구촌은 전쟁이 종식되지 않았고 평화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전쟁을 시도하는 어리석음을 반복 한다. 이렇게 반복되는 잔인한 전쟁의 원인이 소유욕과 지배욕에서 시작되었고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반대로 사람들이 서로 베풀고 서로 섬긴다면 세상에 평화가 정착된다는 이론이 따라서 성립된다. 헌데 이 간단한 원리를 실행하지 못하는 것이 또한 사람이다. 그중에서 가장 시급한 통재의 대상이 자신이며 자신을 통재하므로 총기는 규제되어야 할 최우선 과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러한 모든 문제해결은 교육과 솔선수법의 과정이 필요한데 이 필요를 가르치는 모델, 교회까지 섬김이란 명분으로 이웃을 지배하려 하는 경향에 빠지고 만 것 같다. 그 대표적이 코란이며 기독교에서 성령의 은사로 받은 사역을 계급으로 누리려는 욕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