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국을 사랑한 선교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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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문 목사(시카고 나눔교회 담임)

에드워드 클레이톤 폴링 가족 (Edward Clayton Pauling)

 

충청남도 강경읍 북옥동에 세워진 강경 침례교회는 기독교 한국 침례회중에 최초의 교회이다. 이 교회는 1895년 내한한 에드워드 클레이톤 폴링(Edward Clayton Pauling) 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ㄱ’ 교회이다. 당시 남녀칠세 부동석, 남녀 유별이 엄격한 유교 전통의 사회상을 보여주고 있다.

충청남도 지역의 기독교 선교는 다른 지역과 달리 미북감리교, 남장로교, 침례교, 성결교 등이 기독교 전파 초기부터 이 지역의 기독교 형성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에드워드 폴링은 자신을 파송한 선교단체는 오지 선교와 순회 선교 정신에 따라 충청남도 강경을 복음의 사각 지역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파송한 선교 단체가 큰 규모가 있는 조직이 아니고 한 개인의 헌신에 의하여 설립된 소규모 초교파 선교 단체이다. 보스턴의 클라렌든 침례 교회에서 (Clarendon Street Baptist Church) 설교했던 펜윅 (Malcolm C. Fenwick) 선교사로 부터 한국선교 보고를 듣고 감동을 받았던 그 교회 집사이며 사업가인 씽이다.(Samuel B. Thing) 자신의 외동딸 엘라의 죽음을 기념하여 담임목사 고든이 1885년에 세워진 엘라 씽 기념 선교회(Ella Thing Memorial Mission)이다. 이 선교 단체를 통하여 에드워드 폴링을(Edward Clayton Pauling) 비롯하여 7명 선교사를 파송 하였다.

에드워드 폴링(Edward Clayton Pauling)과 그의 약혼녀 마벨 발렌타인 홀, 여선교사 어맨다 가들라인(Amanda Gardeline)이 내한하여 처음 서울에서 본격적으로 선교활동을 시작 하다가 폴링은 강경 출신 포목 장사꾼 지병석씨를 전도하여 1895년 여름에 한강에서 침례를 베풀었는데 국내의 첫번째 침례를 받은 유일한 교인이 되었다. 그 계기로 폴링은 지병석씨의 권고로 그가 강경으로 사역지를 옮기고 1896년 2월9일 폴링부부와 지병석등 5명으로 한국 최초의 침례교회인 강경교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폴링부부는 이곳에서 사역 하면서 첫 아들을 출생 했는데 폴링이 늘 존경하고 영적 지도자 고든 목사의 이름을 따서 아들의 이름으로 지었다. 그러나 첫 자녀의 출생의 기쁨도 4년후 고든 아들이 세상에 떠나는 아픔으로 양화진 묘지에 묻혔다. 에드워드 폴링은 한국 선교사로 입국하여 5년간 금강을 중심으로 강경, 칠산, 공주를 개척 하여 칠산에서는 장교환, 장기영, 나오미, 이화춘,이화실 신자를 배출하게 된다. 에드워드 폴링 선교사를 비롯해, 프레드릭 스테드만(Frederick W. Steadman) 선교사, 말콤 펜윅 (Malcolm C. Fenwick) 선교사가 1896년부터 1935년까지 이곳에 머무르며 강경 지역을 비롯해, 주변 지역 복음화를 위해 헌신했다.

청일전쟁 이후에는 국제 정세가 불안하고 민심은 혼란한 가운데 백성들은 미국에 대한 기대와 개화 정신과 기독교 관심이 컸다. 그러나 에드워드 폴링은 국,내외 불안과 파송한 선교단체의 재정난으로 선교가 위축되고 아들을 잃은 상처로 미국으로 귀국하여 남은 여생을 펜실베이니아 주  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가 1960년 96세에 소천 하였다. 이름도 빛도 없이  한국 복음화를 위해  초석 (礎石)이 된  아름다운 헌신의 마음은 늘 기억 될것이다.

참고도서 : 내한선교사총람, 양화진 선교사의 삶, 기독신보,대한기독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