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도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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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용 목사(시카고기쁨의교회)

시카고 오헤어 공항을 지날 때마다 창공에 날아오르는 비행기를 본다. 똑같은 활주로에서 똑같은 방향의 하늘로 향해 날아오르지만, 어느 쯤에는 서로 완전히 다른 곳으로 날아가게 된다. 예전에 공항에서 일하던 지인이 “비행기가 공항에서 이륙할 때 똑같은 곳을 향해 날아가는 것 같지만, 서로 다른 비행기가 아주 작은 차이인 1도의 각도를 틀어서 날아가면 한 비행기는 미국 뉴욕으로 가고, 다른 비행기는 브라질에 상파울로로 가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처음에는 1도의 차이가 난다. 멀리서 보면 서로 붙어 있는 것 같고 한 선분 같을 것이다. 그러나 그 선분을 직선으로 각각 선을 이어 긋기 시작하면, 조금씩 간격이 벌어지면서 나중에는 서로 완전히 다른 곳을 향해 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1도의 차이지만, 나중에는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한 선생님께서 1도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지금은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은 교실에 앉아 공부하며 똑같은 고민을 하면서 지내기 때문에 서로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그 안에서 단 몇 도라도 차이가 생기게 되면, 대학을 가고 사회생활을 하며 중년이 되었을 때 서로 얼마나 다른 길을 걸어왔는지 큰 차이를 깨달게 될 것이라고 조언해 주시던 기억이 난다. 실제로 학창시절, 단 1도나 2도 정도의 차이가 났던 친구들은 서로 거리가 없었다. 친했고 가까웠다. 왜냐하면 막 시작한 1도와 2도의 차이는 그리 멀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날수록, 그 1-2도의 차이가 꽤 큰 간격을 만들어 냈다. 어떤 친구는 이제 더 이상 만날 수 없을 정도의 위치에 올라가 있었고, 다른 친구는 세상을 보는 눈이 서로 너무 달라 이제는 결코 대화와 만남을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성경 고린도전서 5장에는 누룩의 이야기가 나온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잊지 말라’는 충고를 주면서, 적은 양이지만 좋은 누룩은 좋은 빵을 만들지만 나쁜 누룩은 먹지 못할 빵을 만든다고 증거한다. 우리 인생의 초기 조건들을 누룩으로 생각한다면, 그 1-2도의 차이로 좋고 나쁜 누룩이 되어 나중에 빵의 품질을 완전히 다르게 만드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첫 발을 어떻게 디디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후회하는 것은 큰 일에 대한 것이 아니다. 작은 결정들 가운데 한 두개 차이로 다른 결정을 한 것에 대한 후회를 오히려 더 많이 한다. 학창시절, 매일 10분씩이라도 운동을 할 걸, 친구들에게 자주 미안하다고 할 걸, 시험 때마다 단 1시간이라도 더 공부를 할걸 등등 우리는 아주 작은 것에 대한 후회를 하지만, 그 작은 차이가 다른 누군가와는 상상할 수 없는 간격을 만들어 낸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 우리가 단 하루를 더 살게 된다면, 우리는 오늘 주어진 시간에 내일을 위해 단 1도라도 어제와는 다른 우리의 모습을 만들어야 한다. 당장은 달라 보이지 않을지라도 단 1도의 차이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면, 그 1도는 훗날 분명히 다른 열매를 우리에게 허락할 것이다.

작은 것을 쉽게 흘려 보내서는 안 된다.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조건일지라도 우리는 최선을 다해 매우 미미한 차이일지라도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매일 우리 주변을 돌아 보아야 한다. ‘나는 어떤 말을 하며 어떤 행동을 보여줄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오늘을 넘어 내일과 미래를 마음에 품고 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판단한 작은 차이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1도만이라도 다른 각도 떠난 비행기는 하나는 뉴욕으로, 다른 하나는 상파울로로 가게 되는 것처럼, 우리 인생의 방향을 바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 오늘의 “1도의 차이”에 최선을 다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