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 문화산책] 음악감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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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계웅(문학평론가/시카고)

60년대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니던 젊은 세대들에게 데이트(만남) 장소는 곳곳에 널려있던 찻집, 다방(茶房)이었다. 그 외에도 빵집, 제과점(製菓店)이 있었는데 종로 2가 YMCA 건너 편 종로서관 옆에 ‘고려당’ 과 ‘뉴욕제과’, 명동 충무로 거리에는 ‘태극당’이 있었고, 좀 나중에 청계천 옆 무교동 입구 2층에 ‘풍년’이 생겼다. 또한 빵집 외에도 덕수궁이나 덕수궁 뒷편 고전풍돌담길이 인기 있었는데 광화문 네거리에서 덕수궁 돌담길로 들어서면 경기여고가 있었고, 붉은 벽돌의 구세군 본영과 미대사관저를 지나 정동교회 옆에 이화고녀가 있어 남학생들에겐 인기 있는 아베크코스이기도하였다. 더구나 정동교회 맞은쪽에 ‘정동밀크홀’이 생겨 문학작품 발표모임이나 만남의 장소로 즐겨 애용(愛用)되기도 했었다.

고전음악감상실(Music Hall)이 서울에 생겨난 것이 바로 이 시기였는데, 탑골공원 파출소 골목에 있던 음악감상실 ‘르네상스’가  화신, 신신백화점을 지나 종로 1가 청진동 피맛골 2층에 자리 잡았고, 명동엔 학사주점 옆 지하에 ‘돌체’가 있었는데 나는 주로 명동입구 명동극장 건너 골목에 2층에 있던 “S.S” 뮤직홀에 단골이다시피 드나들었다. 나중에 종로 YMCA 빌딩 내에 음악감상실 ‘디쉐네’가 들어섰는데, 나는 ‘디쉐네’도 가끔 들락거렸다. 60년대에는 오리지널 LP 전축(電蓄) 판(版, 디스크)이라든가 전축을 가진 집이 드물었기 때문에 음악감상실을 이용할 수 밖에 없던 시절이기도 하였다. 음악감상실에서는 신청곡을 받아 벽걸이 칠판에 작곡자와 곡명(曲名)을 적어놓았기 때문에 음악을 들으며 타이틀을 통해 자연히 클래식뮤직에 친숙하게 되고 차츰 음악지식을 넓혀가게 되었다. 대학생들 간에는 클래식뮤직 곡명을 많이 알고 있다는 게 은근한 자랑거리요 긍지심을 심어주기도 하였다.

한국에서 60년대만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고전음악에 대한 교양(敎養)을 습득할 기회는 음대생들을 제외하고는 전혀 없었다. 오직 서울의 기독교방송에서 ‘명곡을 찾아서’라는 일주에 한번 고전음악 방송이 있었고, 나중에 ‘명곡을 찾아서’라는 간단한 고전음악 해설집이 문고판으로 나온 것이 전부였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기독교방송의 ‘명곡을 찾아서’의 타이틀 음악이 Haydn의 교향곡 101번 D Major ‘The Clock’의 2악장 경쾌한 Andante 멜로디였다.

당시 음악감상실에서 인기 있던 신청곡은, 베버(Weber)의 ‘무도회의 초대’(Invitation to the Dance),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뮤직’(Eine Kleine Nachtmusik), 베토벤의 ‘로맨스 1번’, 헨델의 ‘할렐루야 합창’등이었고, 내가 좋아하던 신청곡은 슈베르트의 피아노5중주 ‘송어’(The Trout) 4악장 주제곡이었다. 고전음악에 대한 상식이 없다보니 우스꽝스런 실수도 저지르게 되었는데, 내 경우엔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를 신청하고서 신청곡이 나오자 확실히 베토벤 음색(音色 멜로디)이기는 한데 멜로디가 전혀 달라서 담당자 DJ에게 즉석 항의를 했었는데, 설명을 듣고 보니 베토벤 협주곡 5번의 제2악장이었다. LP판 앞면은 1악장이 녹음 수록 되어있고 뒷면은 2악장, 3악장이 담겨져 있었는데, DJ가 실수로 뒷면을 틀어놓은 것이었다. 나는 이런 우스개 실수를 통하여 협주곡(Concerto)은 3악장(Movements)으로 되어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는 현재의 삶을 만족하고 있다. 우리가 테크놀러지(Technology)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 큰 축복인데, 옛날에 음악감상실에 가서 신청곡으로나 들을 수 있었던 고전음악을 이제는 아무 때나 집에서 CD나 DVD로 감상할 수 있고, ‘로마의 휴일’이나 ‘초원의 빛’, ‘7인의 신부’, ‘황태자의 첫사랑’, 그리고 비비안 리와 로버트 테일러 주연의 ‘애수’(Waterloo Bridge)를 안방에서 다시 볼 수 있으니, 실로 “나의 잔이 차고 넘치나이다”(My cup overflows.)라는 감사의 찬탄(讚嘆)이 절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