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성경상식 38] 글씨를 크게 썼던 바울의 사정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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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원 목사(시카고언약장로교회 담임)

갈라디아서 말미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다소 생뚱맞게 들리는 말을 한다.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갈 6:11). 대입을 위한 수능시험이나 SAT를 치르는 우리 자녀들의 고생에 동참하는 의미에서 사지선다형 문제로 한 번 풀어보자. 위에서 바울이 뜻한 바는 무엇이었을까? (1) 인간적 자랑을 늘어놓는 사람들에게 경고하기 위해서였다. (2) 특별히 강조할 내용이 있어서 그 부분을 큰 글자로 적었다. (3) 바울의 글씨체가 본래 큼지막했다. (4) 바울이 이 부분을 직접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말이다.

어떤 답을 골랐는지요? 이것은 바울이 어떤 방식으로 편지를 썼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한 지표(指標)다. 고대의 편지 쓰기는 지금처럼 간단하고 용이하지 못했다. 매끄러운 종이가 있던 시절도 아니었다. 바울 시대에 주로 사용했던 파피루스는 이집트에서 나는 식물의 줄기를 가늘게 벗겨내 붙여 만든 필기 용지였다. 오늘날의 종이처럼 매끄럽지 않은 표면에, 갈대 끝을 잘라 만든 펜으로 글씨를 정서(正書)하려면 상당한 기술이 요구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보통 숙련된 기술을 습득한 필경사(서기) 구실을 하는 비서를 두고 글을 쓰고는 했다. 우리가 예전에 많이 사용했던 등사용 철필 작업을 생각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바울도 이런 관행을 따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로마서의 뒷부분에 보면 문안인사에서 갑자기 1인칭 단수가 가리키는 인물이 바울 아닌 딴 사람으로 바뀐다. “이 편지를 대서(代書)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롬 16:22). 갑자기 난데없이? 바울이 로마서를 더디오라는 사람에게 그의 편지를 대서(代書)시켰다는 증거이다. 로마서만이 아니라 다른 대부분의 편지에 있어서도 바울은 이처럼 필경사를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측근이었던 필경사가 구술하는 편지를 다 받아쓰고 나면 편지 말미에 직접 펜을 들어 문안인사 부분을 적으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고전 16:21; 골 4:18).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모든 편지의 표식(表式)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살후 3:17).

이렇게 편지의 끝 부분에 자신의 친필로 한 마디 씩 하는 것은 그 편지의 내용에 사도로서의 권위를 담는 의미도 있었다. 또한 그 편지가 바울의 것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수신자에게 알리는 서명(書名) 구실을 하기도 했던 것 같다. 바울 편지의 수신인들은 숙련된 필경사가 정서한 편지 뒤에 붙어있는 그의 필체를 확인하면서 사도가 하나님의 권위로 말씀하시는 것 같은 생생한 분위기를 감지했을 것이다. 유명 스타들의 사인을 보면서 그를 가까이 느끼는 십대들의 기분을 여기에 비교하면 너무 불경한 것일까?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문제를 일으키던 유대주의자들에게 속지 말 것을 강력하게 권했다. 그리고 자신의 권면에 사도적 권위를 부여하며 친필로 사인을 한다. 중요한 문서에 직인을 찍는 마음이다. “내 손으로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그런데 웬 큰 글자? 예전에 등사를 위해 철필 글씨를 써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필경사 아닌 비전문가 바울이 친필로 펜을 들어 꺼칠꺼칠한 지면에 자신의 표적을 남기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삐뚤빼뚤 큼지막하여 유치원 아동들이 그린 것 같이 어눌한 글씨를… 생각하면 정감이 없지 않다. 그러니 위의 퀴즈의 답은? 4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