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가 지난 50년간 원전과 병원, 연구기관 등에서 적용해 온 방사선 안전 원칙을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NRC는 현재 방사선 노출을 ‘합리적으로 달성 가능한 최저 수준’으로 유지하도록 한 이른바 ALARA 원칙을 없애고, 작업자의 예상 피폭량에 따라 보호 조치를 차등 적용하는 방식으로 규정을 개편할 계획이다.
기존 제도는 일반인과 방사선 작업자가 받을 수 있는 최대 피폭량을 정하는 기준과 함께, 그 한도보다도 가능한 한 낮게 노출을 유지하도록 요구해 왔다. 방사선 노출량이 증가할수록 암 발생 위험도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NRC는 최대 피폭 한도 자체는 바꾸지 않는다고 밝혔다. 대신 작업자의 예상 피폭량이 허용 기준에 가까워질수록 더 엄격한 보호 조치를 적용해 한도를 넘지 않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개편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데이터센터와 인공지능 산업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에 대응해 미국의 원자력 발전량을 4배로 늘리겠다는 정책을 추진하는 가운데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행정명령을 통해 NRC에 과학적 근거에 따른 방사선 기준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호 니 NRC 위원장은 “안전 기준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모호성을 없애는 것”이라며, 일반인과 작업자에게 적용되는 최대 피폭 기준은 그대로 유지된다고 밝혔다.
원자력 업계는 규정이 명확해지면 소형모듈원자로 등 신규 원자로 개발과 인허가가 빨라질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업계는 규정이 바뀌더라도 작업자와 주민의 피폭량을 계속 낮게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ALARA가 사라질 경우 실제 피폭량이 기존보다 허용 한도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NRC는 원전 부지 경계에 거주하는 가상의 주민을 기준으로 방사성 물질 배출 허용량을 연간 10밀리렘에서 25밀리렘으로 높이는 방안도 제시했다.
일반인의 연간 방사선 피폭 한도는 100밀리렘이며, 흉부 엑스레이 1회의 피폭량은 약 10밀리렘이다. NRC는 실제 주민들은 원전에서 더 멀리 살고 방사성 물질도 공기와 물에서 분산되기 때문에 현실적인 피폭량은 기준보다 훨씬 낮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ALARA를 완전히 폐지하기보다 ‘합리적인 수준’의 의미를 명확히 하고 국제 기준과의 차이를 줄이는 방식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NRC는 앞으로 수개월 안에 새로운 방사선 보호 규정을 확정할 예정이다. <김승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