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카스 하늘길 막히자 발렌시아 공항 거쳐 육상 우회로 모색
스페인 구조대원 “여진 두렵지 않아…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야”
“라과이라주로 가자”…시민 자원봉사자들 통행증 받으려 줄지어 서
700만 해외 거주자들도 ‘십시일반’…”오토바이로 현장 가서 전달”
(보고타·카라카스=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베네수엘라를 강타한 연쇄 강진의 여파는 카라카스에서 1천㎞ 넘게 떨어진 콜롬비아 보고타의 엘도라도 국제공항에서부터 고스란히 느껴졌다.
29일(현지시간) 새벽. 엘도라도 공항 A6 게이트에는 베네수엘라 산업도시 발렌시아로 가려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그중에서도 중장비로 몸을 감싼 사람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반소매 차림이었지만, 큼지막한 배낭에는 안전모와 각종 구조 장비가 빽빽이 실려 있었다. 그들의 옆에는 날카로운 ‘구조 감각’을 벼린 구조견들이 서 있었다. 지진 피해자들을 구하기 위해 사지로 뛰어든 국제 구호 팀원들이었다.
스페인에서 온 구조대원 아폴리오 미네르바 씨는 이날 공항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베네수엘라에 가기 위해 많은 대원이 모였다”면서 “아직 정확히 어디를 가는지는 모른다. 발렌시아에 가야만 어디 가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수많은 구조 현장을 경험했다”며 “여진이 이어지고 있지만 본진은 끝났기에 두렵지 않다. 지금은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는 게 최우선이다. 1분 1초라도 빨리 현장에 가고 싶다”고 덧붙이며 발렌시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미네르바 씨의 마음은 타들어 갔지만, 스페인에서 카라카스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하늘길은 이미 끊긴 상태였다. 지진 여파로 카라카스 국제공항이 전면 폐쇄돼서다. 이 때문에 구조대는 또 다른 국제공항이 있는 발렌시아로 입국한 뒤 육로를 통해 지진 현장으로 우회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륙 후 2시간 뒤, 미네르바 씨를 비롯한 수십 명의 국제구조대는 베네수엘라 발렌시아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공항 입국장에서 초조하게 입국 심사를 기다리던 베네수엘라 주민들과 여행객들은 구조복을 입은 대원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깐깐하기로 유명한 베네수엘라 출입국 심사관들 역시 이날만큼은 절차를 최소화한 채 구조대원들을 사실상 ‘프리 패스’로 통과시키며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땅을 밟은 구조대원들 앞에는 더 거대한 장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24일 규모 7.0이 넘는 연쇄 강진이 강타하면서 베네수엘라의 발전소와 정유시설, 공항, 지하철 등 기간시설은 마비됐다. 인명 피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 29일 현재 공식 사망자만 1천700명을 돌파했다. 잔해 속에 갇힌 수많은 매몰자를 살릴 수 있는 이른바 ’72시간 골든타임’이 야속하게 흘러가면서, 제때 사고 현장에 도착하지 못한 구조대원들의 초조한 마음은 이미 임계점을 넘어가고 있었다.

이들의 마음만 다급한 건 아니었다. 이날 오후 카라카스 남서쪽의 대규모 공연장 ‘폴리에드로 데 카라카스’에 모인 사람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평상시라면 K팝 콘서트 같은 대형 공연을 즐기러 왔을 시민들이지만, 이날 길게 늘어선 줄에선 전혀 다른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들이 초조하게 기다리는 건 이번 지진으로 가장 막대한 타격을 입은 라과이라주(州) 진입을 위한 ‘특별 통행증’이었다. 최근 내무부 수장 디오스다도 카베요 장관이 라과이라주를 통행금지 구역으로 선포하면서, 정부와 각국 구호대를 제외한 민간인의 출입은 엄격히 제한된 상태다. 이날 줄을 선 주민 대부분은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합법적인 진입 허가를 받으려는 목적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그중에 한 명인 기계공 레이보르프 루이스 씨는 오토바이에 구호품을 싣고 라과이라주로 갈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의료품과 당장 필요한 물품들을 구조대원들과 유가족들에게 직접 전달하고 싶어서 대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랜 경제 봉쇄와 연간 수백%에 달하는 인플레이션 탓에 베네수엘라 서민들은 지진 전에도 이미 ‘풍전등화’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한인 교민들에 따르면 4인 가족 기준으로 현지 최저 생활비는 650달러 수준인데, 공무원 기준으로 한 달 평균 임금은 270달러에 불과하다. 이 같은 지독한 생활고 속에서 20대 중산층 청년이 자비를 털어 구호품을 마련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루이스 씨는 해외에 나가 있는 가족들이 고국의 고통받는 이웃들을 위해 십시일반 보내온 성금으로 겨우 약품을 구했다고 했다. 그는 “해외 가족들이 보내준 소중한 돈으로 의료품을 겨우 마련했다”며 “통행증이 나오면 오토바이를 타고 가서 전달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