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평창 하늘의 인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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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언(시카고 평통 간사)

 

두달 전에 지면을 통해 한반도기와 태극기라는 제목으로 평창올림픽 개막식에 공동입장하는 남과 북에 대하여 평통간사로서의 소회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불편한 마음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나 남과 북이 원래 한형제였고 여유가 생긴 형으로서 조금 너그러워지면 어떻겠는지 순진한 감상을 개진하였었지요.

돌이켜보면 지난 두달은 현기증이 날정도의 역사적인 시간이었습니다. 2월의 평창올림픽과 3월의 평창패럴림픽이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올림픽을 계기로 문재인대통령이 과감하게 북에 대해 손을 내밀자 김정은은 국가원수 김영남과 여동생 김여정을 서울로 보냈습니다. 3차 남북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4월말에 열리게 되었고, 평양으로의 대통령 특사파견은 결국 사상 최초의 5월중 미북정상회담 결정으로 이어졌습니다. 코리아패싱과 코피전략을 다들 얘기하고 있던 작년의 비관적 상황을 떠올려 보십시오. 문대통령은 그 지지자들마저도 기대하거나 예상하지 못했던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대통령 지지도가 남북협력에 대한 제안만으로도 크게 흔들리던 것을 생각해 보면, 두달만에 매우 큰 변화를 실감합니다.

대북특사대표였던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백악관 면담을 마치고 어두운 밤 역사적인 미국정상회담 결정을 긴급 발표하던 3월초의 어느날, 저는 제18기 시카고평통자문위원 60여명과 함께 평통 해외위원들을 모두 모아서 인천에서 진행된 해외전체회의에 참석중이었습니다. 시종 진지했던 회의는 평통의 의장이신 문대통령에 대한 의례적인 공치사가 아니라 남북관계 변화의 배경에 대한 이해와 향후 미주에서 평통이 어떠한 활동으로 남북통일에 기여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자리였습니다.

전체회의에 참석한 이낙연 국무총리는 최근의 발표들이 공개된 지금으로서는 갑작스러워 보이겠지만, 대통령 취임이후 지금까지 물밑에서 국익과 한반도평화를 위해 신중하게 준비되었으며, 특히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하는데 결정적인 주변국들에게 미리 상의하면서 차분하게 진행된 것임을 증언하였습니다. 통일부장관 조명균은 북측 특사의 한국방문시 이틀넘게 동행하였던 김여정 부부장에 대해 이런 평가를 했습니다. 차분하고 겸손한 성정을 가진 인물이 그들이 소위 말하는 백두혈통의 절대권력의 자리에 있는 것이 북을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나 다행스럽게 느껴졌다고.

3월 9일 열린 평창 패럴림픽 개막식에 평통위원들이 모두 참석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올림픽때처럼 한반도기를 들고 남북이 공동입장하지 않고, 가나다 순서에 맞추어 먼저 “ㅈ” 차례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대표하는 장애인선수들이 인공기를 앞세워 평창올림픽 주경기장에 입장하였습니다. 큰 환영과 박수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채웠습니다.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입장하는 것마져도 불편해 하던 한달전에 비하면 참으로 극적인 변화라 느껴졌습니다. 개최국이 마지막에 입장하는 전통에 따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장애인선수들이 입장할 때에 모두가 일어나 태극기를 휘날리며 느낀 뜨거운 마음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여전히 북의 의도를 의심하며 정부의 유화적인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동포분들이 상당히 있는 줄 압니다. 저와 같은 젊은 세대의 평통간사도 북의 순수성에 대해 의심을 완전히 걷어내지는 않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번에 평통회의 덕분에 의견을 듣게된 현정부의 고위관료들도 순진하게 북에 끌려다닐 사람들로는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세상사는 늘 진보와 보수간의 갈등과 경쟁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실은 그게 당연한 것입니다. 이제 상대방을 죽이려고 하지 말고 공존을 얘기했으면 좋겠습니다. 통일은 남과 북이 해야하는 것입니다만, 그보다 먼저 적어도 우리 안에서 세대간이든 이념적이든 좌우간에 조금은 너그러워졌으면 합니다. 우리땅에 휘날리는 인공기를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남과 북이 통일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