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의 유일한 희망

525

이종형 은퇴목사/시카고

크리스마스에 아이들은 산타로부터 어떤 선물을 받고 싶다는 소원 목록을 만들지만 어른들도 무엇을 갖고 싶다는 희망을 가진다. 비싼 침대에 누우면 불면이 풀리고 잠이 잘 올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근대 서구는 교육과 과학, 법률, 자선을 발전시키면 이상적 평화가 올 것이라 희망하였지만 1차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허탈에 빠졌다. 희망하고 투자하는 대로 되지 않은 일이 많다.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으리, 어둔 밤 지나서 밝은 아침이 온다는 자연이치는 확실하지만 사람은 희망과는 달리 여전히 가난과 억압, 고통과 분리 속에서 신음하고 한탄한다. 첨단 과학을 자랑하는 세계는 눈에 보이지도 않은 세균에게 활동과 자유를 내어주고 있다. “흑인의 생명이 귀하다”는 행진을 하며 폭동과 약탈, 방화와 살인을 자행하는 현실이요 정직과 공정이 민주주의의 기반이지만 거짓과 술수로 가득하다면 우리는 어디로 눈을 돌릴까? 좌절과 한탄의 늪에 빠진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하는 옛 성도의 음성이 오늘 나를 일깨운다.

어둠 속에서 양을 지키는 목자들에게 하늘의 빛과 함께 천사가 나타나 온 세상을 위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한다며 평화의 구주가 났다고 한다. 동방에서 천체를 연구하던 세명의 박사들은 왕의 별이 나타나서 길을 인도하는 것을 발견하다. 목자나 박사는 듣고 본대로 희망을 찾아 나서다. 기쁨과 평화는 비천한 목자나 고상한 연구자만 아니라 온 세상이 추구하는 대상이다. 인류의 희망, 기쁨과 평화를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이기에 그가 인간에게 구원과 평화를 주기 위하여 스스로 사람이 되어 오셨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하나님이 처녀의 몸을 통하여 비천한 마구간에서 태어난다는 것이 특이하지만 그는 목자와 박사의 경배와 선물을 받으면서 또한 그를 제거하겠다는 시기와 미움의 칼날도 그가 임한 세상의 현실이다. 여기서 그의 삶과 행보는 어떠하였나?

그는 ‘자기 죽음’의 세례 의식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을 받고 세상에 나타나다. 가난하고 병들고 눌린 자에게 치유와 해방, 자유를 선물한다. 소외되고 멸시 받는 이들을 찾아 친구가 될 뿐 아니라 가지고 누리는 자라도 그를 찾으면 그의 소원도 허락한다. 배반과 거절, 미움을 받아도 그는 배반하고 거절하고 미워하는 자를 용납하며 평화와 자유를 나눈다. 그는 사람의 깊은 소원에 응하여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한다. 무엇을 말씀하나?

길은 여기와 저기를 연결한다. 나누어진 장소와 시간, 관계를 연결한다. 지역과 지역, 사람과 사람, 사람과 하나님이 분리하고 반목하며 고통하는 현실에서 자신이 그 중간의 막힌 담을 헐고 길을 낸다는 말이다. 사람이 가장 원하는 ‘모든 것 되는 하나님’, 그와의 관계를 막고 있는 ‘죄’를 자신의 죽음으로 해결하고 하나님과 하나되는 길을 열어 주신다. 진리는 본질이다. 하나님은 누구며 사람은 무엇이며 사람의 기본 필요는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 주신다. 생명은 누림이다. 오늘의100세 시대나 옛 900년 시대에도 더 누리고 싶은 것, 죽지 않은 생명이 소원이다. 이보다 더 큰 희망이 있을까? 예수님만이 이 소원에 응답하는 유일한 희망으로 이 땅에 오시고 우리와 함께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