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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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남수 목사(순복음충만교회)

–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시62:1)-

시편 62편의 배경은 다윗 왕이 장인 사울 왕에게서,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목숨이 위태로워 피난할 수밖에 없었던 절망의 때입니다. 다윗의 세 번째 아들 압살롬이 아들 중 가장 뛰어났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뛰어난 아들이 왕이 되고픈 욕심 때문에 아버지를 배반하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또한 평생 다윗 왕을 도왔던 심복 아히도벨도 다윗 왕을 배반하고 압살롬과 함께 반역에 가담했습니다. 다윗은 엄청난 배신감과 인생에 대한 회의로 몸부림쳤습니다. 그러나 이런 절망 속에서도 다윗은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다윗은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여기서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겠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것은 하나님을 조용히 묵상하겠다는 뜻도, 깊은 산중이나 골방에 들어가겠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침묵하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말을 하건 안 하건, 홀로 있건 함께 있건 간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겠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믿음의 핵심은 –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시62:7)이였습니다. 결국 반란은 진압되고 그의 믿음대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환난 중에도 다윗이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시시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잠잠히 하나님의 구원을 바란 대표적인 인물을 든다면 아마도 하박국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합2:3)며 희망으로 때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현실은 최악이었습니다. 무화과나무는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에는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도 소출이 없었습니다. 밭에는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는 양이 없고, 외양간에는 소 또한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며 감사하고 찬양했습니다.

성경에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 29:11-13).

시편 62편의 기자는 거듭해서 ‘여호와만이 나의 반석이요 나의 구원이요 나의 산성이심’을 고백하며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시62:2)‘다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그가 지금 그만큼 불안해하며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시62:7절)라며 오직 자기를 높이는 자이시며 반석과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합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어려운 때를 견디는 비결 세 가지를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 기도하라고 합니다. –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시62:8). 찬송가 539장의 가사처럼 ‘주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마음을 쏟아노라’는 것입니다

둘째, 인간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라고 합니다. –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시62:9).

셋째, 악인의 삶의 양식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 포악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 치심치 말지어다(시62:10). 이것은 고난 받는 의인의 삶을 포기하고 악인들처럼 살면 잘 될 것 같은 유혹을 뿌리치라는 당부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것은 시선입니다. 지금 어떤 일이 생겼느냐 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무엇을 바라보느냐, 누구를 바라보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다윗은 환란 가운데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