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주를 보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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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목사 (선한이웃교회 담임/미육군 군목)

지금은 세계 어디서든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사용해 보고싶은 이들과 언제든 얼굴을 서로 마주보며 맘껏 대화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라크 전쟁의 초기인 2천년대 초반만해도 그같은 일은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통화하기위해선 하나의 전화통에 수많은 병사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며 그것도 제한된 몇분의 시간만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단지 몇분간의 통화지만 수천마일 떨어진 곳에서 들려온 가족들의 음성을 들음으로 거친 전쟁터의 피로와 공포도 잊게 됩니다. 지갑안에 소중하게 간직된 가족의 사진을 어루만지며 다시 사랑하는 이들을 만난 날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보고자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욕구인듯 합니다. 마주보고 얘기도 하고, 서로의 소중한 감정을 느끼며, 그리움과 사랑을 나누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신앙도 이와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용서 자비 그리고 사랑을 통해 새힘을 얻습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앞으로 나아가 주를 예배하며 그분을 보기원하는 간절함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성경에 소개된 유월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한 헬라인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이같은 그들의 간절한 신앙의 욕구를 보게됩니다.(요12:20-33) 그들은 이방인들였지만 하나님의 성전에 예배하기위해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의 일행을 만나곤 빌립이라는 예수의 제자에게 이렇게 부탁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보기 원합니다!” 사실, 그들의 이같은 간곡한 부탁은 이땅에 사는 모든 가난한 영혼들의 외침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주를 보기 원합니다!”

 

불행히도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성전앞에서 출입이 거절당한 부류였음을 아시나요? 2천년전 당시 헤롯이 세운 예루살렘 성전입구엔 헬라어로 다음과 같이 기록된 돌판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이방인들은 이 성전에 들어올 수 없다. 누구든 이것을 어기면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No foreigner may enter within the sanctuary. Whoever is caught, on himself shall he put blame for the death.) 예루살렘 성전을 두른 높은 담장앞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려온 이방인들은 좌절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사실 유대인들의 기도의 책(siddur)에 따르면 그들은 아침에 일어나 세가지의 복을 찬양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음과 “여자”로 태어나지 않음, 그리고 “노예”로 태어나지 않음을 감사했다고 합니다. 유대인의 성전역시 이방인의 뜰, 여인들의 뜰, 그리고 남자들의 뜰을 구분해 담을 쌓아 놓았습니다. 당시 유대 종교사회의 편협함을 한 눈에 읽게되는 대목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현재도 그 사회가 준 풍습과 규범에 의해, 혹은 종교적 선입관과 편견에 의해, 혹은 자신이 가진 스스로의 부끄러움등으로 인해 하나님의 성전앞에서 거절당한 좌절감을 맛보야하는 오늘의 이방인들을 보게됩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이같은 이방인들의 간곡한 기도인, “우리가 주를 보기원합니다”라는 요청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래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요12:24,32) 이는 곧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모든 이들을 하나님앞으로 인도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셨습니다. 마치 광야에서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든 놋뱀의 지팡이를 쳐다볼때 하나님의 자비를 맛보듯, 갈보리산 십자가에 높이 달린 예수를 의지함으로 어떠한 죄인도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앞으로 나아가는 은혜를 입게 되리라는 약속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 아들이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죄인을 구원하기위해 내려놓으신 값진 희생이셨습니다. 마치 간음하다 현장에 잡혀 떨고있는 여인을 위해 돌팔매질을 하려고 달려두는 군중앞에 두팔을 벌려 온몸으로 여인을 막아선 예수님의 모습처럼, 십자가는 당신의 전부를 드린 희생의 제물이며, 썩어진 밀알였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교회의 두터운 담장보다 더 높이 솟아있어야 합니다. 십자가는 사라지고 담장만 높아진 교회는 수많은 가난한 영혼들의 장애물이며 걸림돌이기 때문입니다. Servant.sa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