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1]2023년 8월 5일 라비니아 페스티발에서 만난 피아니스트 임윤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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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5일 하일랜드 팍의 라비니아 축제는 마린 알솝 (Marin Alsop)의 지휘와 시카고심포니의 협연으로 임윤찬의 라흐마니노프 (Rachmaninoff)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의 연주가 있었다. 잔디밭과 파빌리온을 가득 매운 관중 속에 정말 많은 한인들이 모인 여름밤의 축제이었다. 한국의 지인이 보내준 연주 입장 티켓이 놀랍게도 파빌리온 내의 제일 앞줄인 A11, 지휘자의 포디움 바로 오른쪽 아래였다. 지휘자와 연주자의 표정과 손끝 움직임까지 읽을 수 있었던 행복한 밤이었다. 전반부에 오그스타 토마스 (Augusta Thomas)의 Sun Dance와 베토벤의 심포니 No 3 “Eroica” 두 곡이 연주 되었고 15분의 인터미션 후에 임윤찬의 무대로 이어졌다.

무대로 등장하는 임윤찬의 첫인상과 그의 연주의 분위기는 참으로 많이 달랐다. 이제 열아홉, 앳된 얼굴의 표정은 무대가 안방처럼 익숙한 여느 전문 연주자의 모습과 사뭇 다른 무표정한 듯 긴장된 모습이었다. 그러나 제1 악장의 도입 부분에서부터 카덴차에 이르는 약 14분 동안 이어진 그의 연주는 피아노의 문외한인 내게도 귀와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긴장감과 박진감으로, 마치 여덟명의 선수를 제치고 70여 미터를 질주한 손흥민 선수를 연상케 하였다. 피아노 솔로와 몇 개의 목관 악기와 호른으로 이어진 목가적인 분위기의 연주는 연주자 자신의 곡 해석과 감성을 드러내 준 뭉클한 공감의 순간이었다. 다행히 양쪽 벽면의 LED 스크린에 손가락 포지션과 움직임이 큰 화면으로 비춰져 피아노의 선율을 따라가며 곡을 이해하고 듣는데 큰 도움이 되었으며, 연주자와 지휘자의 호흡을 생생하게 보고 느낄 수 있어서 더 큰 감동이었다.
전에도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과 3번을 들은 적이 있었지만 라비니아 페스티벌에서 만난 임윤찬의 연주는 라흐마니노프를 단번에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 작곡자도 임윤찬과 같은 연주자를 만나기 위해 100년이 넘는 긴 시간을 인내하며 기다렸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3악장의 피날레로 가기 위해 온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손가락의 힘을 더하기 위해 몇 번이고 뛰어오르며 건반을 내려치는 모습은 처절함이 느껴지는 한 편의 서사시와 같은 장엄함이었으며, 더 이상 무대에 등장하던 긴장된 모습의 임윤찬은 없었다. 청중을 열정의 도가니로 몰아가다가 안도케 하는 서정의 계곡을 오르내리게 하였던 탁월한 뮤지션을 만나게 한 라비니아 파빌리온 A11 좌석은 2023년 8월 한여름 밤의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열광적인 환성과 박수에 이어진 앙코르 곡, “이토록 감미로운 멜로디는 내 생애 처음이다”라는 말을 남겼다는, 쇼팽의 에튀드 Op.10 No 3을 들으며 라비니아의 여름밤을 아쉽게 마무리 하였다.

시카고문인회 회장 박창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