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성·흑인·아시아계 부통령···‘여성 오바마’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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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당선자와 함께 승리연설 연단에 선 해리스.[로이터]

부통령 지명 당시 남편 덕 엠호프와 함께 한 해리스.[뉴욕타임스]
어린 시절 카말라 해리스와 어머니 샤말라 고팔란의 모습.[인스타그램]

■ 카말라 해리스 출생에서 부통령까지
아버지 자메이카·어머니 인도 출신 이민자녀
“불평 말고 무언가 하라” 유리천장 깬 원동력
고령 바이든 ‘단임’ 시 차기주자 급부상 전망

‘여성, 흑인, 이민자 그리고 부통령.’

물리적 차별과 심리적 장벽을 뚫고 미국이 새로운 역사를 썼다.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의 탄생은‘최초 신화’라는 개인의 성취를 넘어 소수자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미국의 지향점을 여실히 드러낸 승리다. 성, 인종, 태생보다 능력과 가치를 알아주는 세상을 향해 미국은 한 발짝 더 내딛었다. 해리스 당선인은 미국 헌정사 첫‘흑인 및 아시아계 여성’ 부통령이다. 아버지는 자메이카, 어머니는 인도 출신이다. 한 개도 버거운 견고한 차별의 벽들을 그는 모두 부쉈다. 그 어느 때보다 분열과 반목이 짓누르는 미국 사회에서 해리스 당선인의 역할이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자메이카·아시아계 이민자의 딸
올해 56세인 해리스 당선인은 1964년 10월20일 북가주 오클랜드에서 자메이카 출신 아버지와 인도 출신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아버지 도널드 해리스는 스탠포드대 경제학 교수, 어머니 샤말라 고팔란은 UC 버클리에서 암 연구를 한 과학자 출신으로 미국에서 둘 다 박사학위를 받은 엘리트 이민자들이었다.

해리스는 자신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준 건 어머니 샤말라라고 털어놓는다. 산스크리트어로 ‘연꽃’을 의미하는 카말라 역시 어머니의 뜻에 따라 지은 이름이다.

“그의 이름은 캐멀라가 아니고, 커말라도 아니며, 카멜라도 아닙니다.” 해리스 당선인은 상원의원 출마 당시 자신의 이름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알리기 위해 동영상을 제작했다. 공화당 진영에서 일부러 그의 이름을 엉뚱하게 발음해 웃음거리로 만들거나, 심지어 뉴스 앵커들도 그의 이름을 틀리게 발음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름에 얽힌 일화는 그가 평생 맞서 싸운 차별의 작은 사례일 뿐이다. 그는 늘 차별에 주눅들지 않았다. 유방암 연구에 매진한 어머니의 가르침이 푯대였다. “자리에 앉아서 불평만 하지 말고 무언가를 해라.”

■유리천장 깨부순 ‘여자 오바마’
덕분에 그는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았다. 흑인 대학인 워싱턴 DC 하워드대를 거쳐 UC 헤이스팅스 법대를 졸업한 뒤 북가자 알라미다 카운티 검찰에서 경력을 시작한 그는 2004년 흑인 여성으로는 첫 샌프란시스코 검사장이 됐다. 직책만 최초가 아니라 마약 범죄자에게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고 취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처음’ 만들었다. 당시 연방상원의원직에 출마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우정을 쌓았다.

2011년엔 흑인이자 여성으로서 ‘최초’로 캘리포니아주 검찰총장에 올랐다. 두 번의 임기 동안 그가 역점을 둔 건 취약 계층 보호였다. 2015년 형사판결 공개 데이터베이스인 ‘오픈저스티스’를 구축해 시민들의 알 권리를 ‘최초’로 시스템화한 검찰총장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정치계 유리천장도 깼다. 그는 2017년 ‘최초’의 아시아계 여성 연방상원의원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캘리포니아주 민주당 상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국토안보 및 정부업무위원회, 법사위원회, 예산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며 입지를 다졌다.

해리스는 2014년 LA의 유명 변호사 더글러스 엠호프와 결혼했다. 엠호프는 부통령의 부인을 뜻하는 ‘세컨드 레이디’에 준해 남편이 미국의 첫 ‘세컨드 젠틀맨’이 된다. 해리스는 남편이 전처와 사이에 낳은 자녀 2명(아들 콜, 딸 엘라)을 키우고 있다.

■바이든의 선택
“겁 없는 전사이자 최고의 공직자.”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8월 러닝메이트로 해리스 부통령을 지명하며 한 말이다. 유색인종이자 여성으로서 많은 난관을 뚫고 스스로 개척해 쌓아올린 업적을 존중한 표현이었다.

해리스 당선인은 “평생 우리를 위해 싸워왔기 때문에 국민들을 통합시킬 수 있는 바이든을 우리의 최고사령관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모든 일을 하겠다”고 화답했다. 백인이자 70대 고령인 바이든 후보자에게 흑인은 물론 소수계층, 여성을 끌어안을 수 있는 해리스 당선인은 꼭 필요한 존재였다. 해리스 의원은 바이든 후보가 각별히 아끼다 먼저 떠나보낸 장남 보 바이든과 절친한 사이였다.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나는 이 직책(부통령)에 앉는 첫 번째 여성이 되겠지만 마지막은 아닐 것입니다”

해리스는 지난 7일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열린 11·3 대선 승리를 알리는 대국민 연설에서 이같이 말하고 “오늘 밤을 지켜보는 모든 소녀는 이곳이 가능성의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해리스 당선인은 이어 “성별과 관계없이 우리나라 어린이들에게 이 나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냈다”며 “(그것은) 야망을 품고 꿈꿔라. 신념을 갖고 이끌어라. 그리고 단지 그전에 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남들이 생각하지 않을 방식으로 너 자신을 보라. 그러나 우리가 너의 모든 발걸음마다 박수를 보낼 것이란 것을 명심해라”라고 격려했다.

해리스 당선인은 또 2009년 별세한 모친에 대해 “그녀가 19살에 인도에서 이곳으로 왔을 때 아마도 이런 순간을 그다지 상상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그녀는 미국은 이런 순간이 가능한 나라라고 깊이 믿었다”라고 밝혔다. 해리스는 작고한 모친이 생전에 자신에게 자주 해줬던 얘기를 여러 차례 회고한 바 있다. “카말라, 너는 많은 일을 하는 첫 번째가 될 수 있지만, 네가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거라.” 미국의 사상 첫 흑인 부통령이자 여성 부통령이 된 카말라 해리스의 ‘최초’를 향한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이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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