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천국과 누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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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규 목사(시카고 한마음 재림교회)

그날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계시는 갈릴리 바닷가에 몰려들었습니다. 거기에는 가난한 자들과 무식한 자들과 누더기를 걸친 거지들과 인상이 험상궂은 도둑들과 방탕한 자들과 할 일 없이 빈둥거리는 자들 그리고 교양 있고 세도 있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 큰 무리 가운데는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천국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가라지의 비유, 겨자씨의 비유등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 하늘 왕국은 어떠한 곳인지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이 무리들 가운데 자칭 교양 있고 학식 있고 지위가 있는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가졌습니다. ‘저 예수가 말하는 천국은 온 세상의 각종 새들이 와서 깃들이고 모든 사람들이 함께 하는 곳이라고 말하는데 그럼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천국에 가는 것인가?’ 이 교양 있는 사람들은 회중을 둘러보면서 의문을 가졌습니다. “대체 하나님의 나라는 어떠한 사람들로 구성되는 것일까?”

어디에 있느냐, 무엇을 하느냐, 무엇을 먹느냐 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와 있느냐, 누구와 하느냐, 누구와 먹느냐 입니다. 어디선가 실시한 행복한 대한 설문 조사에서 222명의 사람들의 행복을 측정해 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장 행복하다고 대답한 10%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행복의 기준은 달랐습니다. 무엇이었을까요? 돈, 건강, 성공과 같은 것이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행복기준은 바로 ‘관계’였습니다. 많은 심리학 연구들은 행복은 ‘어디서’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와’의 문제임을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곳에 가도,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아무리 좋은 것을 먹어도 같이 있는 사람이, 같이 일하는 사람이, 같이 밥 먹는 사람이 안 좋으면 행복하지 않습니다. 천국도 마찬가지 입니다. 아무리 황금도성이고, 생명과수가 있고, 생명수가 흐르는 곳 이어도 그곳에 함께 살 사람들이 안 좋은 사람들이면 그곳이 천국이 될 수 있을까요?

“천국은 어떤 사람들이 모이게 될 것인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교양 있는 사람들이  주위를 둘러 보니까 도대체가 같이 가고 싶은 사람들이 없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저런 거지들과, 방랑자들과, 무식한자들과 함께 천국에 갈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고 계셨던 예수님께서 이제 그 답을 내 놓으신 것이 바로 마태복음 13장 33절의 말씀입니다.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마태복음 13:33) 천국은 누룩과 같다. 누가 하늘나라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답변은 돈, 명예, 지위, 가문, 학식 그 어떤 것도 아니고 바로 누룩이었습니다.

이 비유에서 누룩은 성령을 상징하는 것이고 가루반죽은 인간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가루반죽은 생명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는 어떠한 변화도 일으킬 수 없습니다. 죄인의 신분을 가지고 출생한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엡 4:18)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가 “허물과 죄로 죽”(엡 2:1)었다고 말합니다. 죽은 밀가루가 스스로 어떠한 변화도 일으킬 수 없듯이 죽은 우리는 스스로 어떠한 변화도 일으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반죽속에 누룩을 넣으면 어떻게 됩니까? 누룩은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룩은 반죽 안으로 침투해 들어가서 반죽 전체를 부풀어 오르게 합니다. 반죽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갈 사람들은 돈, 명예, 지위, 직분이 높은 사람들이 아니라 성령으로 변화된 사람들입니다. 성령으로 변화된 사람들이 모인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성령의 누룩이 들어간 사람은 부드럽고 말랑 말랑하고 따뜻하고 고소합니다. 성령의 변화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누룩없이 구운 반죽 덩어리처럼 딱딱하고 뻣뻣합니다. 아마도 천국에는 갓 구워낸 빵처럼 쫄깃하고 부드러우며 방글 방글 따뜻한 분들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따뜻하고 부드러우신가요? 딱딱하고 뻣뻣하신가요? 누룩의 변화를 경험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