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9 F
Chicago
Wednesday, April 15, 2026
Home 종합뉴스 주요뉴스 7. 미 제조업 현장에 우뚝 선 장재철 리본웨빙 대표

[시카고 한인 개척자들]7. 미 제조업 현장에 우뚝 선 장재철 리본웨빙 대표

21
리본웨빙(Ribbon Webbing Corp.) 장재철 대표.

미국 방산업·안전 산업을 지탱한 특수 섬유 기술력
값싼 길 대신 품질과 신뢰를 택한 46년 외길
“정직하게, 한 계단씩” 현장 경영이 만든 성장
드러내지 않은 나눔으로 공동체 받쳐온 조용한 손길

[편집자주] 이민 1세대의 삶은 개인의 성공담을 넘어 한인사회의 형성과 성장 그 자체를 보여주는 역사이기도 하다. 낯선 땅에 뿌리내려 일터를 일구고, 가족을 세우고, 공동체를 지탱해온 이들의 시간은 오늘의 한인사회를 떠받치는 든든한 토대가 됐다. 한국일보와 WINTV는 시카고 한인사회의 초석을 다진 원로들의 삶을 기록하는 연재 ‘시카고 한인 개척자들’을 통해 그 발자취를 되짚고 있다. 일곱 번째 순서는 미국 방산업·안전 산업을 떠받쳐온 특수 섬유 기술력을 바탕으로, 미국 제조업 현장에서 46년간 한 길을 일궈온 리본웨빙(Ribbon Webbing Corp.) 장재철 대표다.

리본웨빙(Ribbon Webbing Corp.) 회사 전경. 리본웨빙은 최첨단 장비와 인증 실험실, 오랜 업계 경험을 바탕으로 고품질 제품 생산 경쟁력을 이어가고 있다.

장재철 대표의 삶은 화려한 조명보다 조용한 축적에 가깝다. 그의 인생을 관통해온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밴 책임감, 기술을 익히겠다는 집념, 그리고 평생 놓지 않은 근면과 정직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

1942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난 장 대표는 유년 시절 강가 마을에서 자랐다. 집에서는 과수원 일을 했고, 어린 시절의 기억은 대체로 평온하고 천진했다. 그러나 그 평온은 오래가지 못했다. 6·25 전쟁이 터지면서 그는 가족과 함께 경북 하양에 있는 친척 집으로 피란을 가야 했다. 여기에 아버지까지 일찍 여의면서, 홀로 남은 어머니는 큰 고생 속에 자녀들을 키워야 했다.

4남매 중 둘째였던 장 대표 역시 어린 나이에 일찍 철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부지런했다기보다 책임감이 있었다”고 담담히 말했다. 그 한마디에는 어린 나이에 삶의 무게를 먼저 배워야 했던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맡은 일은 끝까지 해내고, 서두르지 않되 흔들림 없이 걸어가는 태도는 그렇게 그의 삶에 자리 잡았다. 장 대표는 “어머니가 고생이 많으셨다”며 “철이 일찍 들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 오히려 평생의 원칙을 세우는 밑거름이 됐다”고 덧붙였다.

◆ 섬유 기술에 인생을 걸다

장 대표가 섬유업에 눈을 뜬 것은 대구에서 친척이 운영하는 공장을 통해서였다. 학창 시절부터 그는 공장을 드나들며 기계와 원단, 공장의 흐름을 눈에 익혔다. 처음에는 사무실에서 업무를 시작했지만, 그의 눈은 이미 공장 안쪽의 복잡한 기계들을 향해 있었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진짜를 배우려면 공장 안, 기술 현장으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때부터 장 대표의 인생은 책상이 아닌, 차가운 기계가 놓인 현장으로 옮겨졌다.

1978년 촬영된 대구 섬유단지 전경. 장재철 대표가 젊은 시절 몸담았던 섬유 산업 현장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사진=한국섬유개발연구원

당시 한국에는 기술 서적조차 귀해 공부를 하고 싶어도 마땅한 자료가 없었다. 장 대표는 일본에서 건너온 섬유 기계 관련 기술 서적을 번역한 자료를 구해 밤새 반복해서 공부했고, 기계와 씨름하며 엔지니어링 감각을 키웠다. 그는 “섬유는 손끝 감각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소재의 장력과 품질을 정직하게 지켜내야 하는 기술이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러한 현장 중심의 집념은 창업으로 이어졌다. 1968년, 27세의 청년 장재철은 한국에서 자신의 첫 공장을 세웠다. 주력 제품은 당시 한국의 수출 효자 품목이었던 가발용 고무 밴드였다. 장 대표는 “기계 몇 대 놓고 시작한 말 그대로 맨손 창업이었다”며 “문 닦는 것부터 기계 고치는 것까지 내 손을 안 거친 일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당시 서울통상 같은 큰 회사에 납품하며 기반을 닦았다”고 덧붙였다. 이 12년간의 한국 내 사업 경험은 훗날 그가 미국이라는 더 큰 바다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됐다.

◆ 시카고, 기계 5대로 다시 시작한 도전

장 대표가 미국 땅을 밟은 것은 1980년이었다. 처음부터 이민을 작정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 한국에서 운영하던 사업의 활로를 찾기 위해 시장을 살피러 건너왔다가 새로운 기회를 목격한 것이 계기가 됐다. 장 대표는 “미국은 한국보다 시장이 훨씬 컸고 제품의 쓰임새도 다양했다”며 “현장을 직접 확인하니 아직 비어 있는 시장의 틈새가 명확히 눈에 들어왔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조사를 해보니 시카고에는 우리와 같은 업종이 아예 없었다”며 ”이건 분명한 찬스라는 판단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본격적인 시장 조사에 착수한 그는 미 전역의 업종 분포를 살폈다. 그 끝에 낙점한 곳이 시카고였다. 장 대표는 “시카고는 미국의 중심부라 동서남북 어디로든 물류가 연결되기 좋았고, 제가 하려는 웨빙(Webbing) 관련 업종이 상대적으로 적었다”고 설명했다. 웨빙(webbing)은 안전벨트, 가방끈, 산업용 고정띠 등에 쓰이는 고강도 띠형 섬유 제품이다. 마침 지역 내 큰 규모의 동종 업체 하나가 막 문을 닫은 직후라 시장은 심한 제품 부족을 겪고 있었고, 거래처들이 물건을 받기 위해 6~7개월씩 대기할 정도로 수요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장재철 대표가 2025년 시카고 아시안연맹(AACC) 제42회 설맞이 행사에서 기업인상을 수상했다.

먼저 장 대표는 홀로 시카고 로렌스 한인타운의 작은 가게를 빌려 기계 5대로 ‘리본웨빙(Ribbon Webbing Corp.)’의 닻을 올렸다. 1년 뒤 합류한 부인 최순진 씨는 한양대 음대에서 콘트라베이스를 전공하고 시립교향악단 단원으로 활동하던 재원이었으나, 낯선 타국에 와서는 망설임없이 작업복을 입었다. 장 대표는 “아내는 촉망받는 음악가였는데 미국에 와서 고생을 정말 많이 했다”며 “기계를 나란히 놓고 아내와 둘이서 직접 웨빙 제품을 만들며 이민 생활을 시작했다”고 아내를 향한 고마움을 전했다.

그 시절 장 대표 부부는 오직 손끝의 노동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야 했다. 그러나 묵묵히 견딘 그 시간은 리본웨빙의 단단한 뿌리가 됐다. 장 대표는 처음부터 성급하게 높이 뛰려 하지 않았다. 대신 오래가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전진했다.

당시 한국에서 자본을 넉넉히 가져올 수 없었기에, 장 대표는 철저히 ‘벌어서 투자하는’ 정공법을 고수했다. 장 대표는 “당시 하나를 벌어 기계 하나를 더 늘리는 방식으로 사업을 키웠다”며 “한꺼번에 두세 계단을 오르려 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는 생존의 원칙을 그때 몸소 익혔다”고 강조했다.

여기까지가 장재철 대표 삶의 전반부라면, 다음 대목부터는 리본웨빙이 미국 제조업의 거센 변화 속에서도 어떻게 살아남아 독보적인 성장을 일궈냈는지 보여주는 본격적인 승부의 시간이 이어진다.

◆ 미 제조업의 큰 전환기를 ‘정면 돌파’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미국 제조업은 거대한 전환기를 맞았다. 많은 기업이 더 싼 인건비를 찾아 중국과 멕시코 등으로 생산기지를 옮겼고, 특히 섬유업계는 그 흐름의 직격탄을 맞았다. 한때 미국 텍스타일 산업의 중심이던 노스캐롤라이나와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대형 공장들마저 문을 닫거나 해외로 빠져나갔다.

그러나 장 대표는 그 흐름을 따르지 않았다. 주변에서 다들 밖으로 나갈 때, 그는 오히려 미국 안에서 길을 찾았다. 물론 그 역시 멕시코 진출 가능성을 검토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직접 멕시코 현지에 가서 2주가량 시장을 조사하며 공장을 세울 수 있을지 세세하게 따져봤다.

장재철 대표가 2025년 시카고 아시안연맹(AACC) 제42회 설맞이 행사에서 기업인상을 수상한 후 WINTV에 소감을 전했다.

장 대표는 당시를 회상하며 “겉으로 보기엔 인건비가 싸 보였지만 전체 운영비와 시스템, 인력 이동 비용까지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오히려 효율이 떨어졌다”며 “무엇보다 내 방식대로 품질과 납기를 철저히 관리하기가 쉽지 않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값싼 생산 방식만으로는 오래갈 수 없다고 확신했다. 한국에서부터 기술을 몸으로 익힌 엔지니어답게 제조업의 본질은 결국 ‘품질’과 ‘신뢰’에 있다는 점을 꿰뚫어 본 것이다. 장 대표는 “다른 기업들이 해외 이전으로 비용을 낮출 때 저는 미국 내 생산을 지키며 기술력을 끌어올리는 길을 택했다”며 “당시에는 과감한 결단처럼 보였겠지만 저에게는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었다”고 돌아봤다.

◆ 정직이 만든 ‘미국산 프리미엄’의 상징

해외 이전을 거부하고 시카고를 지킨 장재철 대표의 선택은 결과로 증명됐다. 리본웨빙은 현재 미국 내 최대 규모의 산업용 특수 섬유 방직업체 중 하나로 우뚝 섰다. 오늘날 미국 내 자동차 및 항공기 안전벨트의 약 5%가 리본웨빙의 라인을 거친다. 화물 고정용 스트랩, 안전 하네스, 군용 장비 등 사람의 목숨과 직결된 제품들이 장 대표의 손을 거쳐 전 세계로 나간다.

리본웨빙의 경쟁력은 독보적인 기술력에서 나온다. 특허 제품인 ‘다이아몬드위브(DiamondWeave™)’는 고마모 환경에서도 견디는 내구성으로 시장을 압도했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UL 기준부터 미 국방부의 군수 규격인 베리 수정안(Berry Amendment) 등을 모두 충족하는 몇 안 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리본웨빙은 안전벨트, 산업용 고정띠, 군수·안전 장비 등에 쓰이는 고강도 섬유 제품을 생산하며, UL 기준부터 미 국방부 군수 규격인 베리 수정안(Berry Amendment)까지 충족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리본웨빙의 특허 제품인 ‘다이아몬드위브(DiamondWeave™)’는 고마모 환경에서도 견디는 뛰어난 내구성으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사진=리본웨빙

주변에서는 그에게 “노동집약적인 섬유업으로 어떻게 중국을 이겼느냐”고 묻는다. NBC, CBS 등 주요 방송사들이 리본웨빙의 성공 사례를 취재하러 왔을 때도 장 대표는 모두 사양하고 조용히 현장을 지켰다.

그는 “방송에 나가는 것보다 제품 하나 제대로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며 “나는 작업복을 입고 기계를 만질 때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화려한 조명 대신 현장의 기계를 택한 ‘엔지니어 경영자’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 “절대 거짓말하면 안 된다”는 경영 철학

장재철 대표의 경영 철학은 근면, 성실, 정직이라는 세 단어로 압축된다. 그에게 이 단어들은 45년 넘게 현장에서 증명해 온 생존의 원칙이다. 그는 지금도 매일 아침 7시면 어김없이 공장으로 출근한다. 직원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 고요한 현장을 한 바퀴 돌며 기계의 상태와 생산 상황을 점검하는 것은 그의 변함없는 루틴이다.

장 대표가 가장 강조하는 덕목은 ‘정직’이다. 그는 “제품을 만드는 사람에게 거짓말은 품질의 타협이고, 그것은 곧 신뢰의 붕괴를 의미한다”고 단언한다. 처음 납품할 때와 수년이 지난 뒤의 제품이 한결같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장 대표는 “원가를 조금 낮추겠다고 실을 한 가닥 빼거나 스펙을 속이는 일은 내 사전에 존재할 수 없다”며 “우리 제품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고객의 믿음이 리본웨빙을 지탱하는 가장 큰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리본웨빙(Ribbon Webbing Corp.) 장재철 대표가 지난 8일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윤연주 기자>

그는 사업을 확장할 때도 과욕을 경계하며 ‘한 계단씩’의 원칙을 지켰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최소 3년은 공을 들여 완벽하게 다진 뒤에야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장 대표는 “한꺼번에 두세 계단을 오르려 하면 반드시 무리가 오고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라며 “조금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단단하게 가는 것이 제조업이 가야 할 길”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본질주의는 그의 일상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큰 성공을 거둔 자산가임에도 그는 여전히 평범한 차를 타고 작업복 차림으로 현장을 누빈다. 언젠가 작업복 차림으로 치과에 갔다가 2,500달러의 치료비 지불 능력을 의심받아 다른 의사에게 인계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을 겪기도 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겉치레나 과시보다는 ‘오늘 내가 만든 제품이 정직한가’라는 본질에 집중하는 삶, 그것이 경영자 장재철이 걸어온 길이다.

◆ 드러나지 않은 조용한 손길, 공동체의 책임

장재철 대표를 아는 이들은 그를 ‘조용한 기부자’라 부른다. 그는 시카고 한인 사회의 주요 행사와 단체를 꾸준히 후원해 왔으면서도 자신을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그의 나눔은 단발성 기부에 그치지 않는다. 지역사회 안팎에서는 그가 수십 년간 한인사회와 주류사회의 크고 작은 자리에서 늘 조용히 후원과 섬김을 이어온 인물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는 화려한 조명 아래 서기보다 뒤에서 공동체를 떠받치는 역할을 자처한다. 장 대표는 “많이 돕는다는 생각보다 내가 할 일을 한다는 마음으로 임했다”며 “생색내지 않고 필요한 곳에 쓰이는 것이 진정한 나눔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장재철 대표(왼쪽)의 오랜 지인인 박해달 회장이 인터뷰 당일 동행했다. 박 회장은 장 대표의 삶과 발자취를 정리한 2페이지 분량의 손글씨 소개문을 직접 준비해왔다. <사진=윤연주 기자>

이러한 태도는 직원들과 그 가족을 대할 때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그는 대학에 다니는 자녀를 둔 직원 가정들을 20년 넘게 뒤에서 묵묵히 도와왔다. 장 대표는 “거창한 도움은 아니더라도 꼭 필요한 순간에 힘이 되고 싶었다”며 “회사는 단순히 이익을 내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이 연결된 하나의 공동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의 나눔 철학은 주말 농장 풍경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주말이면 그는 3,000에이커(약 400만 평)에 달하는 광활한 대지에서 직접 트랙터를 몰며 무와 배추를 키운다. 수확철이 되면 직원과 지인 수백 명을 초대해 직접 기른 작물을 나누며 잔치를 벌인다. 이 농사는 수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누기 위한 고귀한 노동에 가깝다. 흙을 만지며 나눔의 기쁨을 일구는 그의 모습에서, 정직한 땀방울이 만들어내는 가장 아름다운 결실을 엿볼 수 있다.

장 대표는 “자연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며 “뿌린 만큼 거두고 돌본 만큼 자라는 자연의 질서는 내가 평생 붙들어온 ‘정직’의 가치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 다음 세대를 향해… “한 계단씩 올라야 멀리 간다”

리본웨빙이 걸어온 시간은 이제 자연스럽게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있다. 섬유 공학을 전공한 큰아들 장은성 씨와 딸 장은지 씨는 졸업 후 부모가 일군 회사에 합류해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을 맡고 있다. 두 자녀는 어릴 때부터 부모의 일을 도우며 자연스럽게 현장을 익혀왔으며, 지금은 회사의 든든한 구성원으로 힘을 보태고 있다.

장 대표는 급변하는 산업 환경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통찰을 내놓았다. 그는 “제조업 역시 이제는 예전 방식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시대가 왔다”며 “더 빠른 변화에 대비하고 혁신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도 “AI 시대의 급격한 변화를 준비하고 이끄는 것은 이제 새로운 시대를 더 잘 아는 자녀들의 몫”이라며 허허롭게 웃었다. 그 웃음 속에는 자신이 닦아놓은 기반 위에서 자녀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미래를 펼쳐가길 바라는 선배 경영자의 깊은 신뢰가 담겨 있었다.

장 대표는 마지막으로 미국 땅에서 꿈을 키워가는 한인 차세대들에게 평생의 삶이 담긴 메시지를 남겼다. 그가 가장 좋아한다고 밝힌 양사언의 시조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는 장 대표가 걸어온 삶의 자세와도 맞닿아 있다. 아무리 큰 목표라도 조급해하지 않고 한 걸음씩 오르면 끝내 닿을 수 있다는 믿음이다.

“미국 사회에서 정직하게, 그리고 열심히 일하면 반드시 길은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다만 서두르지 마십시오. 한꺼번에 두세 계단을 오르려 하지 말고, 한 계단씩 차근차근 밟고 올라가야 합니다. 태산이 높다 해도 결국은 포기하지 않고 오르는 자의 것입니다.”

장재철 대표의 삶에는 과장이나 포장이 없었다. ‘뿌린 만큼 거두고, 오르는 만큼 도달한다’는 진리를 45년간 현장에서 묵묵히 증명해왔을 뿐이다. 시카고를 넘어 미국 제조업 현장에 남겨진 그의 발자취는 한인 이민 1세대의 성실과 정직을 보여주는 삶의 기록이자, 한인 이민사의 소중한 자산으로 남았다.

<윤연주 기자>

[시카고 한인사회 선도언론 시카고 한국일보]
1038 S Milwaukee Ave Wheeling, IL 60090
제보: 847.290.8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