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를 따르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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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박사(횃불재단 트리니티 목회학 박사 프로그램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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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 마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을 따라왔던 제자들에게 마태복음 후반부에서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의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한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부인한다”는 표현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할 때 썼다. 예수님이 끌려갈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했다. “나는 예수님을 모릅니다. 나는 그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의 가르침을 배우지 않았고, 그의 가르침 대로 따르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 자세를 자신에게 적용하라고 하신다. “나는 나를 모릅니다. 나는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따르지 않겠습니다”라는 자세다. 이것이 자기 부인이다.

믿음은 자기를 부인에서 시작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믿음은 이런 자세에서 출발한다. 그 당시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은 자기를 의롭게 여겼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예수님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들은 예수님을 따를 수 없었다. 예수님은 자기를 의롭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해주실 수 없다.

사도 바울을 생각해보자. 본시 그는 바리새인이었다. 예수님을 따르기 전, 그는 자기를 의롭게 여겼다. 그는 자기의 육체를 신뢰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대단한 사람이며, 자기에게는 자랑할 거리가 많은 줄 알았다. 그러나 바울이 예수님을 따르자, 자기를 부인할 수 있었다. 그는 이전에 자랑하던 것들을 다 해로 여겼다. 그는 육체적 자랑거리들을 배설물로 여겼다. 이제 그는 자기 속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 알았다. 그는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임도 알았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되었다.

이처럼 믿음은 자기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는 데서 시작한다. 자기를 부인할 때, 예수님을 따를 수 있다. 사실 자기를 부인하면 부인할수록, 예수님을 더욱 잘 따를 수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온전하게 자기를 부인하셨다. 이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예수님을 본받아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 자기와는 완전히 결별을 고해야 한다. 이제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 되어야 한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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