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위기가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축복의 기회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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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남수 목사(순복음충만교회)

제자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쳐 배에 들어와 가득하게 되었더라(막4:35-37). 누구나 다 삶에 위기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타고 계신 배에도 풍랑은 있었습니다. 인생의 위기를 만났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예수님의 제자들은 풍랑을 보고 두려워했습니다. 영적 시선 감각을 잃고 곤경 속에 빠졌습니다. 이제 제자들은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위기 속에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막4:38-41). 위기가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축복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는 자에게 절망적인 위기는 없습니다. 한 신실한 목재소 직원이 있었습니다.그는 40대 초반에 회사에서 청천벽력 같은 해고통보를 받았습니다. 극심한 불황으로 더 이상 버틸 힘이 없게 된 회사측에서 감량경영을 선언한 것입니다. 갑자기 실직자가 된 그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해고에 담긴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그는 건전한 사람들이 묵을 수 있는 여관을 시작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전혀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세계적인 사업망을 거느린 호텔 `홀리데이 인’을 창업한 케몬스 윌슨입니다. 그는 눈앞에 해고통지서를 놓고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지 않았습니다. 시련을 도약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만약 케몬스 윌슨에게 해고 통보가 날아들지 않았다면 그는 목재소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비전의 사람은 ‘다시 한 번 해 보자’, 절망의 사람은 ‘해 봐야 별 수 없어’ 라고 합니다. 시카고에 대화재가 나서 모두가 비탄에 빠져 있을 때 한 가게에 이런 글이 붙여져 있었습니다. ‘우리 가게는 불에 다 타 버렸지만 우리의 비전은 아직 타지 않았다’. 성경은 –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난다(잠24:16)고 말씀합니다. 요셉은 애굽의 종의 신분으로 전락했으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형통한 자가 되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닫힌 문 앞에서 망설이지 말고 새롭게 열린 문을 향해 서서 기회를 위해 준비해야 되겠습니다. 시련 중에 있는 자의 생애를 역전 시키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역전의 순간을 기대하면서 오늘도 성령님을 인생의 동업자로 모시고 전진하는 자가 되어 승리해야 되겠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영국군은 1,000년 동안 터키가 점령하고 있던 팔레스틴을 점령하고 예루살렘 탈환을 남겨놓고 있었습니다. 알렘비 장군은 영국 정부로부터 팔레스타인을 정복할 것을 명령받았습니다. 당시에는 이슬람교도들인 터키군이 예루살렘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함락시키는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포격을 하면 쉽게 점령할 수 있었겠지만 알렘비는 예루살렘이 예수님의 흔적이 있는 곳일 뿐 아니라 ‘거룩한 성’ 임을 생각하고는 그곳에서 피 흘리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는 공격 결정을 유보하고 영국 왕에게 피를 흘려서라도 점령할 것인지 여부를 물었습니다. 영국 왕 죠지 5세 역시 피 흘리는 것은 원치 않았기에 알렘비 장군에게 금식하고 기도하며 주의 뜻을 기다리라고 명령했습니다. 한편 예루살렘 성 안의 터키 병사들은 자신들을 공격하러 온 사람이 알렘비 장군이라는 말을 듣고는 큰 두려움에 쌓이게 되었습니다. ‘알렘비’라는 말이 터키 말로 ‘하나님이 대항하신다’, ‘하나님이 저주하신다’라는 뜻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더구나 성을 포위한 채 공격은 하지 않는 알렘비 군대에 극심한 공포를 느낀 터키 군이 예루살렘 성문을 열고 알렘비 군대에게 무조건 항복했습니다. 영국군은 총 한 방 쏘지 않고, 알렘비 장군을 선두로 모자를 벗어 들고 찬송하면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였습니다. 지금도 기도의 능력은 변함이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