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향한 의술, 환자의 삶을 온전히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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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충남대학교병원 조강희 병원장

대전 충남대학교병원 조강희 병원장 인터뷰

계절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던 7월의 마지막 날, 대전의 하늘은 작열하는 태양으로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숨 막히는 열기 속, 하얀 백발에 단정하게 가운을 여민 조강희 병원장은 본지 특파원을 소년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맞았다. 한 시간 남짓, 그와의 대화는 단순한 병원 경영에 대한 브리핑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공간이 가져야 할 궁극적인 책임감과, 기술이 인간을 위해 어떻게 복무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철학적 고뇌가 담긴 한 편의 서사였다. 시카고를 포함한 미 중서부, 더 나아가 남미에 흩어져 살아가는 우리 한인들에게 ‘고국’이라는 이름이 주는 따스함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게 할, K-의료의 눈부신 현주소와 미래를 그의 목소리를 통해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53년 역사 위에 새긴 미래, 병원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다

조원장 취임 후 지난 2년은, 충남대학교병원의 53년이라는 시간의 더께 위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이었다. 그는 이를 ‘단순한 현대화가 아닌, 병원의 정체성을 다시 쓰는 일’이라 정의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낡은 건물을 허물고 새 건물을 올리는 물리적 변화를 넘어, 의료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실려 있었다.

앞으로 새롭게 들어선 암·중증질환 특화센터는 앞으로 큰 기대를 모으며 더 질 높은 서비스를 예고한다. 마치 명품 의상을 재단하듯, 각 환자의 유전적 특성과 생활 패턴까지 고려한 ‘맞춤 의료’가 이곳에서 실현된다. 절망의 동의어처럼 여겨졌던 희귀·난치성 질환 앞에서는 세포치료 기반의 고난도 치료 체계를 의미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암세포까지 추적하는 고정밀 방사선 치료 플랫폼, 인간의 손을 넘어선 정교함으로 오차를 없애는 최첨단 로봇수술센터는 단순한 장비 도입이 아니다. 이는 ‘환자의 안전’이라는 절대 명제를 지키기 위한 병원의 치열한 노력의 결실이며, 의료진에게는 최고의 무기를, 환자에게는 최상의 결과를 약속하는 신뢰의 증표다. 이러한 인프라의 고도화는 충남대학교병원을 국내 최고 수준에 올려놓는 것을 넘어, 세계 유수의 병원들과 당당히 어깨를 겨루는 ‘글로벌 플레이어’로의 출사표와 같았다.

7월 31일, 충남대학교병원에서 조강희 병원장이 본지 특파원과 만나 K-의료의 미래와 병원의 비전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다.

경계를 넘는 신뢰, K-의료의 심장부에서 세계를 품다

미국 뉴스위크의 ‘세계 최고 병원’ 선정 타이틀은 단순한 순위가 아니었다. 2년 연속 지역 국립대병원 1위라는 영광 뒤에는 조강희 원장이 늘 강조해 온 ‘신뢰’라는 명제가 숨어있었다. 머나먼 타국 동포와 외국인 환자들에게 이 신뢰는 단순한 의료 서비스를 넘어, 고향의 품처럼 따뜻한 ‘마음의 안식처’와 동의어였다. 조 원장은 병원이 환자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 ‘심리적 안정감’이라 힘주어 말했다. 그의 리더십 아래 AI는 차가운 기계가 아닌, 언어의 장벽을 허물어 소통을 돕는 따뜻한 기술이 되었다. 이 모든 혁신은 결국 ‘아플 때 믿고 기댈 수 있는 고국의 병원’이라는 든든한 이름으로 기억되기 위한 치열한 노력이었다. 조 원장은 혁신을 환자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는 끊임없는 고민으로 정의했다. 한국 의료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고, K-의료의 위상을 높이는 그의 항해는 이미 가장 순조로운 궤도에 올랐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대전과 세종, 두 개의 심장으로 완성하는 ‘원스톱 케어’의 약속

대전 본원과 세종 분원. 두 개의 공간은 단순한 물리적 거리를 넘어, 서로의 강점을 극대화하는 유기적인 생명체처럼 움직인다. 조 원장은 이를 ‘두 개의 심장이 뛰는 하나의 몸’에 비유했다. 상급종합병원인 대전 본원이 암, 뇌, 심장과 같이 생명을 다투는 중증질환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강력한 심장’이라면, 세종 분원은 지역 주민의 삶 가장 가까이에서 건강을 돌보는 ‘따뜻한 심장’이다.

이 두 심장은 ‘진료 순환 체계’라는 혈관으로 긴밀하게 연결된다. 대전에서 고난도 수술을 받은 환자는 더 이상 낯선 도시에서 회복기를 보낼 필요가 없다. 자신의 생활권인 세종으로 돌아와 섬세하고 꾸준한 재활 및 추적 관리를 받으며 온전한 일상으로 복귀한다. 또한 대면으로 직접 소통하는 ‘다학제 협진 회의’는 이 두뇌 집단의 시너지를 폭발시키는 용광로다. 대전과 세종의 최고 의료진들이 한자리에 모여 환자의 영상 데이터와 임상 기록을 공유하며, 마치 한 사람의 환자를 위해 수십 명의 주치의가 머리를 맞대는 듯한 최적의 치료 계획을 공동으로 수립한다. 이는 단순한 협력을 넘어, 환자 한 사람을 중심으로 모든 의료 자원이 통합되는 ‘글로벌 메디컬 클러스터’로의 진화를 의미한다. 이제 해외의 한인 환자들은 진단부터 수술, 회복까지 한 곳에서 완결되는 진정한 의미의 ‘원스톱 케어’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서울행’ 대신 ‘우리 곁’에서, 최고를 완성하는 자부심

“왜 최고의 치료를 받기 위해 KTX에 몸을 실어야 합니까?” 조 원장의 이 질문에는 ‘지역 완결적 의료체계’에 대한 확고한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오랫동안 한국 사회는 ‘아프면 서울로 가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충남대학교병원은 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명제에 온몸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중증, 고난도 질환을 지역 내에서 완벽하게 끝맺음하는 것, 이것이 충남대병원의 가장 강력한 차별점이자 경쟁력이다.

2017년 부인암 로봇수술로 시작된 혁신의 불씨는 2024년 다빈치 SP 로봇센터 개소와 대장암 200례 돌파라는 눈부신 성과로 타올랐다. 특히 생체 간이식 100례 달성은 대전·세종·충청·호남권을 통틀어 최초의 기록으로, 수도권 대형 병원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실력을 증명한 사건이었다. 또한, 중부권 유일의 임상교육시뮬레이션센터는 ‘안전’이라는 가치를 실현하는 심장부다. 실제와 똑같이 구현된 수술실 환경에서 의료진은 수없이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팀워크를 다지고 최신 술기를 연마한다. 기술의 정점에서 인간 중심의 서비스를 놓치지 않는 노력, 이것이 바로 충남대학교병원이 지역을 넘어 글로벌 의료의 허브로 성장하는 진짜 이유다.

숫자 너머의 가치, 환자의 미소로 증명된 10가지 혁신

2024년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조사 ‘우수기관’ 선정. 이 결과 뒤에는 ‘환자 경험’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펼쳐진 10가지의 구체적인 변화가 있었다. 조 원장은 성과를 나열하기보다, 그 변화가 환자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이야기했다.

병원 문턱을 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불안감. 그 첫 관문인 예약 시스템은 단 1단계로 파격적으로 축소되었다. 스마트폰이든, 컴퓨터든, 병원 키오스크든 상관없다. 복잡한 절차에 진땀 흘릴 필요 없이 몇 번의 터치만으로 예약이 완료되자, 예약 누락률은 45%나 감소했다. 접수, 수납, 서류 발급을 위해 하염없이 기다리던 시간은 디지털 원무 시스템 도입으로 30%나 단축되었다. 환자에게 시간은 단순한 기다림이 아닌, 희망과 불안이 교차하는 소중한 순간이다. 그 시간을 되돌려준 것이다.

특히 조원장은 환자들의 작은 불평, 사소한 칭찬 하나까지 모든 직원이 공유하고 즉시 개선안을 도출하도록 관심을 가졌다. 이 살아있는 소통 덕분에 환자 불만은 60%나 줄었다. 입원실의 낡은 커튼을 바꾸고, 개인 조명을 설치하고, 환자용 무선 리모컨을 도입하는 작은 변화들이 모여 병실 환경 만족도는 85점에서 93점으로 수직 상승했다. 이 모든 혁신은 결국 하나의 목표를 향한다. 바로 ‘환자의 미소’다.

대전 충남대학교병원 전경

AI의 냉철함에 인간의 온기를 더하다, 스마트 병원의 내일

간호사가 환자에게 다가가 눈을 맞추고 자신을 소개하며(Connect, Introduce), 소통하고(Communicate), 무엇이 필요한지 묻고(Ask), 그에 응답한 후(Respond), 자리를 떠날 때 인사를 건네는(Exit) 것. ‘CICARE 매뉴얼’이라 불리는 이 약속은 충남대학교병원이 그리는 스마트 병원의 핵심 철학을 보여준다.

“AI가 문진표를 10초 만에 작성해주고, 디지털 펜 솔루션이 수기 차트를 자동으로 전산화해주면, 의료진은 그 아낀 시간을 오롯이 환자에게 쏟을 수 있습니다.” 조강희 원장은 AI를 ‘의료진의 경쟁자’가 아닌 ‘환자를 위한 최고의 조력자’로 정의했다. 반복적인 서류 작업과 데이터 분석은 AI의 냉철한 이성에 맡기고, 의료진은 그 시간에 환자의 손을 한 번 더 잡아주고, 눈을 맞추고, 마음을 어루만지는 데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역설적으로 인간적인 케어가 더욱 중요해진다는 그의 통찰은 깊은 울림을 주었다. 첨단 시스템의 차가움 뒤에 환자의 심장 박동 소리, 체온, 그리고 가슴속 희망이라는 따뜻함을 불어넣는 것. 그것이 충남대학교병원이 꿈꾸는 진정한 스마트 병원의 모습이었다.

‘나’를 넘어 ‘우리’를 위한 헌신, 공공의료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다

충남대학교병원은 지역 최고의 의료기관이라는 타이틀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대전·충남 지역 전체의 건강을 책임지는 ‘공공의료의 중추’로서의 역할을 자처한다. 공공부원장이라는 직제를 신설해 공공의료 컨트롤타워를 세운 것은 그 상징적인 조치다. 응급, 심뇌혈관, 암 등 필수의료 분야에서는 24시간 원스톱 대응 체계를 구축해 골든타임을 사수하고, 희귀병을 앓는 어린이, 재활이 필요한 환자, 만성질환을 앓는 어르신 등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위한 전문 센터를 운영하며 따뜻한 의료 안전망을 펼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병원 담장을 넘어 지역사회와 손을 맞잡는 ‘다층 협력 네트워크’다. 대전시, 소방서, 보건소, 동네 병·의원까지 모두가 하나의 팀이 되어 환자의 퇴원 이후 삶까지 돌보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보건복지부 평가 최우수 등급은 이러한 헌신에 대한 당연한 결과였다. ‘예방-치료-재활-돌봄’으로 이어지는 통합적 서비스를 통해 ‘한 사람의 시민도 소외되지 않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이들의 묵직한 책임감이 느껴졌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희망을 잇는 다리가 되어

인터뷰가 끝날 무렵, 조강희 원장은 나지막이 말했다. “궁극적인 목표는 기술로 사람을 치료하는 것을 넘어, 기술이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환자의 삶 전체를 책임지겠다는 그의 굳은 의지는,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 그의 삶을 관통하는 철학 그 자체였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우리 동포들에게, 충남대학교병원의 이러한 도약은 단순한 의료 기술의 발전을 넘어선 의미를 지닌다.

무더위 속에서도 식지 않는 열정으로 환자 중심의 새로운 의료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조강희 원장과 충남대학교병원 모든 구성원의 빛나는 헌신에, 그들이 만들어갈 새로운 의료의 미래가, 전 세계 한인들에게 더 큰 희망과 자부심이 되어주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이가희 시카고한국일보 한국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