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청 정신의학과 강도형 원장
“AI 시대, 감정의 리듬만이 인간의 마지막 영토“
2025년 11월 6일 오후, 서울 강남역 인근 ‘서울 청 정신의학과’을 찾았다. 진료실 창가에 앉아 미소를 짓는 강도형 원장의 모습은 한 폭의 정물화 같았다. 탁자 위에는 그의 철학이 응축된 저서 『감정 시계』가 놓여 있었고, 그 옆의 뇌영상 연구 자료들은 보이지 않는 생명의 신비를 조용히 웅변하는 듯했다. 서울대 의대 정신의학과 교수로 20여 년, 한국 정신의학의 최전선에서 수많은 영혼의 풍경을 목격해 온 그. 그는 이제 인간의 감정을 단순한 심리 현상을 넘어, ‘시간의 리듬으로 흐르는 생명의 언어’로 해석하며 우리 시대의 가장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까지 주목받은 그의 연구는, 격변하는 AI 시대에 인간의 존재 이유를 ‘감정의 본질’에서 찾아내려는 과학적이자 철학적인 시도이다. 본지는 찰나의 침묵 속에서 몸과 뇌, 그리고 AI 시대의 인간다움에 대한 깊은 사유의 여정을 강 원장과 함께 시작한다.
찰나의 고통, 그 근원을 ‘생각’이 아닌 ‘느낌’에서 찾다
정신의학의 거장들이 무의식과 사고의 영역을 탐험할 때, 강도형 원장은 환자들의 가장 낮은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예전엔 무의식과 사고, 즉 생각을 다뤘지만, 실제 환자들은 ‘생각이 아파서’가 아니라 ‘감정이 아파서’ 병원에 옵니다.” 그의 통찰은 인간 고통의 근원을 ‘생각의 논리’가 아닌 ‘감정의 흐름’으로 돌려놓는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환자는 “지금 어떤 감정인가요?”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고 했다.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명명하고 인식하는 능력조차 잃어버린 채 살아간다. 감정을 알아차리는 능력이야말로 자기 이해의 첫걸음임에도 말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잉태한 것이 바로 『감정 시계』이다. 그는 단언한다. “감정은 시간의 흐름처럼 흘러가고, 매 순간 변화합니다. 이 감정의 파동을 시간의 단위로 기록하고 관찰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감정 리듬을 이해하는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그의 시계는 단순한 측정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를 읽어내는 ‘내면의 지도’였던 것이다. 감정은 흐름이며, 그 흐름을 읽는 능력이야말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잃어버린 감수성인 것이다.
몸이 먼저 웅변한다: 감정은 뇌가 아니라 생명의 ‘신호’로 시작된다
우리는 감정을 흔히 ‘머리’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현상으로 여긴다. 그러나 강 원장은 이 오랜 통념에 단호히 반기를 든다. “감정은 단순한 마음의 상태가 아니라 몸의 신호입니다. 위장이 긴장하면 불안으로, 심장이 두근거리면 두려움으로 느낍니다.” 그는 이 과정을 ‘몸 전체의 협연’이라 표현한다. 자율신경계가 먼저 반응하여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고 손에 땀을 낸 후에야, 뇌는 그 신호를 해석하여 ‘아, 내가 지금 두렵구나’ 하고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는 가슴에 손을 얹으며 이곳이 바로 감정의 출발점임을 보여준다.
이 ‘몸의 언어’를 이해하는 핵심은 ‘내수용 감각(interoception)’에 있다. 몸 내부의 장기, 혈류, 호흡 등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신호를 감지하는 능력이다. “감정이란 결국 몸속에서 일어나는 생리적 반응을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몸의 신호를 읽지 못하면 감정이 왜곡되고, 그 감정의 왜곡은 다시 사고와 판단까지 흐리게 만듭니다.” 현대사회는 머리로만 사는 시대, 생각은 과잉되었으나 느끼는 힘은 극도로 약해졌다. 몸의 감각을 잃어버린 채, 현대인의 우울과 불안은 ‘몸의 감정 신호를 잃어버린 결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감정을 인식한다는 것은 결국 ‘몸의 리듬을 회복하는 일’이며, 이 리듬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가장 근원적인 음악임을 그는 힘주어 말한다. 감정은 뇌의 논리가 아닌, 몸의 음악이며, 몸에서 시작해 몸으로 끝나는 생명의 과정이다.
시간의 파동을 시각화하다: 『감정 시계』와 ‘감정 지도’의 철학
그의 연구는 우주의 시간처럼 감정의 리듬 또한 흐르고 반복된다는 전제에서 시작된다. “시계가 한 방향으로 흐르지만, 감정은 반복되면서도 결코 같은 방향이나 형태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 리듬이 곧 생명 유지의 핵심이지요.” 강 원장은 이 생명의 원리를 바탕으로 ‘Feel Clock’, 즉 감정 시계를 창안했다. 감정의 흐름을 시각화하여 하루, 한 달, 1년 단위로 ‘감정 지도’를 그리는 개념이다.
이것은 감정을 단순한 기분이 아닌, 기록 가능한 데이터로 전환하여 자기 감정의 주기와 방향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게 돕는다. 감정의 ‘리듬 데이터화’라는 이 새로운 접근은 정신의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감정은 논리가 아닌 흐름으로만 이해되며, 그 흐름을 눈에 보이게 만드는 것이 바로 감정 기록이다. “감정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흔적으로 남습니다. 그 흔적을 기록하면 비로소 나의 감정 리듬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감정 시계』는 단순한 심리 교본이 아니라, 인간 감정의 시간 인문학을 펼쳐 보인다.
감정의 주파수를 맞추는 일: 관찰과 기록은 곧 자기 치유의 시작
『감정 시계』는 억압 대신 관찰과 기록이라는 구체적인 실천 지침을 제시한다. 감정을 글로 적는 순간, 감정은 더 이상 나를 휘두르는 주체가 아니라 ‘관찰의 대상’이 된다.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글로 적는 순간, 감정은 대상이 됩니다. 즉각적인 반응이 아니라 관찰의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지요.” 이때 우리는 감정에 휘둘리는 객체가 아닌, 감정을 바라보는 주체로 거듭난다.
그는 이를 ‘감정의 주파수를 맞추는 일’이라 명명했다. 사람마다 고유한 감정의 진동수가 있는데, 그 리듬을 모르면 타인의 감정에 무참히 휘둘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감정 기록은 하루를 되돌아보며 내 감정의 온도와 속도를 점검하는 성찰의 과정이다. 이것이 바로 감정의 자각이며, 결국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가장 빠르고 정확한 길이다.
그는 ‘속도의 철학’을 넘어 ‘시간의 인문학’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외부의 속도에 끌려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감정은 생명의 속도로 움직이지요. 그 느림을 인정하지 않으면 감정의 리듬이 무너지고, 결국 삶의 중심을 잃게 됩니다.” AI 시대의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더 빠른 판단이 아니라 더 깊은 감정의 감지력이라는 것이다. 감정을 기록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생명의 시간을 되찾는 일인 것이다.
명상의 과학적 증명: 몸의 리듬 조율로 뇌를 회복한다
강 원장은 서울대 교수 시절부터 명상과 뇌영상 연구를 병행하며, 비과학적이라는 편견에 맞섰다. fMRI를 통한 연구는 그에게 과학적 확신을 주었다. “명상가들의 뇌를 분석해 보니, 통증이나 스트레스에 관여하는 영역이 회복되고 감정 조절력이 높아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는 명상을 “몸을 통한 뇌의 회복 훈련”으로 정의한다. 단순한 정신 안정이 아니라, 호흡과 맥박, 장기의 움직임에 귀 기울이는, 곧 생명의 리듬을 회복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의 연구는 명상을 ‘감정의 과학화’로 확장하며, “몸의 리듬을 조율하면 마음의 조화가 생긴다”는 진리를 입증했다. 그는 ‘명(明)’이 ‘밝을 명’이 아니라 ‘어두울 명’이라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진짜 명상은 밝은 곳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자기 안의 리듬을 듣는 훈련이며, 몸의 감각을 깨우면 뇌가 변하고, 뇌가 변하면 감정이 바뀌는 것이 곧 생명의 회복임을 강조한다. 감정의 본질은 생명의 리듬이며, 인간의 의식은 결국 몸에서 비롯된다는 그의 단언은 이원론적 사고를 깨는 통찰이다.
인간의 마지막 영토: AI 시대, 감정의 리듬을 지켜야 하는 이유
AI가 인간의 지적 영역을 빠르게 잠식하는 시대, 우리는 기계에 지배당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과 마주한다. 강 원장은 이 질문에 명쾌하게 답한다. “AI는 생각을 모방할 수 있지만 감정은 복제할 수 없습니다.” 사랑, 슬픔, 그리움 같은 감정은 생명의 리듬이기에, 기계는 결코 그것을 체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의 사회를 ‘속도 중독’이라 표현하며, 기술이 빨라질수록 생명의 시간은 여전히 느리다는 모순을 지적한다. “감정의 리듬이 무너질수록 인간다움도 사라집니다. AI가 지배하는 시대일수록 감정의 리듬을 지키는 일이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지요.” 그는 감정을 ‘인간 존재의 마지막 영토’라고 강조하며, AI 시대에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더 빠른 판단이 아니라 더 깊은 감정의 감지력이라고 역설한다. 기술의 속도보다 ‘감정의 속도’를 되찾는 것이야말로 인간 중심의 삶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감정의 데이터화: ‘필링뱅크’로 스스로를 이해하는 새로운 도구
『감정 시계』의 철학은 이제 디지털 플랫폼인 ‘필링뱅크(Feeling Bank)’로 확장되고 있다. 개인의 감정을 단어, 이모티콘, 언어 패턴으로 기록하고 시각화하여, 마치 금융 거래 내역처럼 감정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이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감정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감정의 자기 이해를 돕는 새로운 도구”를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궁극적으로는 AI 분석 기술을 결합해 개인별 ‘감정 리듬 분석 리포트’를 제공하여, ‘기술이 인간을 대신하는 시대, 인간의 감정만큼은 데이터로 다시 인간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비전을 제시한다. 생각은 세상을 설명하지만, 행복은 감정에서 온다. 감정은 경험이고, 경험은 삶의 기억이다. AI는 계산할 수 있어도 느낄 수 없다. 감정을 아는 인간만이 진짜 인간이라는 그의 외침은, 감정을 느끼고 지켜내는 일, 그것이 인간답게 사는 일임을 웅변한다.
지금, 당신의 감정 시간은 몇 시입니까? 희망의 리듬을 찾아서
강도형 원장과의 인터뷰를 마쳤다. 진료실 문을 나설 때, 서울 강남의 거리는 아까와는 다른 빛깔로 다가왔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속도와 경쟁 속에서 ‘생각’을 앞세우며 달려왔지만, 정작 삶의 중심인 ‘감정의 리듬’을 놓치고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단순한 심리 교본이 아닌, “당신의 감정 시간은 지금 몇 시입니까?”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에 답하는 순간, 비로소 우리의 하루가 달라질 것이라는 약속과 함께.
감정은 뇌가 아니라 몸의 신호이다. 오늘 하루, 잠시 멈춰 서서 심장 박동과 호흡에 귀 기울여 본다. 강도형 원장의 『감정 시계』는 단순한 자기개발서가 아니라, 이 격변의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렸던 ‘자기 생명의 시간’을 되찾아주는 등대의 불빛 같았다. ‘감정을 느끼고 기록하는 순간, 우리는 기계에 지배당하는 객체가 아닌,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끄는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을 회복할 것’이라는 그의 목소리가 널리 퍼지길 기대한다.
<이가희 시카고한국일보 한국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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