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기쁨에도 무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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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용 시카고 기쁨의 교회 담임목사

 

지금은 고인이 되신 고 김근태 의원은 전두환의 신군부 정권시절, 조작된 시국 사건으로 감옥살이를 하면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고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그때 받은 고문을 기억하면서, 인간적으로 소름 끼치는 한 가지 증언을 한다.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와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받으면서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지독한 죽음의 공포 가운데 빠지게 되는데, 그때 그렇게 고문을 하던 경찰들은 아무런 감정이나 연민도 없는 짐승이나 기계처럼 자신의 입 속에 물을 뿌리고 전기고문을 위해 다리와 귀에 전기코드를 연결했다고 한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상상할 수 없는 고문을 받은 김의원이 반송장이 되었을 때, 괴물과 같은 고문 경찰들이 잠시 고문을 멈추고는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시집간 딸 때문에 행복하다” “아들이 시험을 잘 봤는지 모르겠다” 라는 등등의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웃기도 하고 걱정도 하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곤 다시 그들의 고문이 시작되면, ‘정말 저들이 사랑으로 낳은 자식이 있는 것일까?’ ‘인간적인 감정과 연민 따위가 있는 존재들일까?’라는 물음에 인간적인 깊은 자괴감과 허탈감에 빠졌다고 한다.

어떤 동물도 자신과 같은 종족이 맹수에게 공격을 받고 해를 당할 때, 자신이 살아 남았다는 이유로 기뻐하거나 행복해 하는 동물은 없다. 슬퍼하지는 않을지라도 남의 고통을 자신의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동물은 없다. 아니, 한 개체만 제외하고는 없다. 그 예외의 동물은 인간이다. 인간은 타인의 고통과 아픔에 연민과 동정 대신에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경우가 있다. 영국의 보수주의의 기초를 세운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는 “인간이란 존재는 남의 불행이나 고통에 대해서 적지 않은 기쁨을 느낀다”고 말했다. 즉 남의 괴로움과 아픔에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것이 진정으로 인간의 기쁨과 행복이라고 할 수 있는가의 자문이 요청된다. 타인과 이웃의 아픔으로 누리는 기쁨이라면, 그것은 참된 기쁨일 수 없고, 그 가치는 한없이 가볍고 보잘것없는 것이 된다. 기쁨도 나름의 진지한 무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곧 기독교는 고난 주간을 맞이한다. 예수의 고난에 대한 실질적인 이유는 그의 제자였던 가롯 유다가 그의 스승인 예수를 은 30냥에 팔아 버린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그 내용이 기록된 성경에서 이렇게 표현한다.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줄 방도를 의논하매 그들이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는지라”(눅 22:4-5)

자기 스승을 판 유다와 그의 배신을 독려하며 수용하는 대제사장들이 기뻐하는 것은 결코 진정한 기쁨이 될 수 없다. 똑 같은 표현이지만, 그 무게는 전혀 다른 것이다. 성경은 예수의 수난을 예수 반대자들의 기쁨과 환호와 강렬히 대비해서 보여준다. 그 이유는 그것이 세상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하나를 왕따 시키고 바보를 만들어 가볍고 치졸한 웃음을 함께 나누던 학창 시절은 이제 세상의 현실이 되었지만, 문제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우리는 누구 하나 “그것은 잘못”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예수를 죽이는 일상을 반복하며, 웃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는 예수의 고난을 생각하며 사순절 기간을 보낸다. 그리곤 항상 2000년 전, 골고다 언덕의 예수와 십자가 위에 예수만을 생각한다. 그러나 그 예수는 지금 우리의 가볍고 유치한 웃음과 기쁨의 뒤에서 눈물 짓고 아파하는 이웃과 타인 가운데 발견되어야 한다. 사순절은 금식과 절제라는 종교적 형식으로 영적 자위를 하는 기간이 아니다. 나의 가벼운 기쁨과 웃음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타인을 배려하며, 철저한 회개와 변화를 실천하는 기간이 되어야 한다. 사순절 직후, 부활절을 무게감 있는 기쁨으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먼저 타인과 세상의 고통과 아픔의 공간에 직접 뛰어 들어가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가벼운 웃음으로 상처와 고통을 입은 바로 우리 옆에 있는 그 사람에게서 예수의 그림자를 찾을 때, 부활절을 참된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다.  따라서 사순절은 기쁨의 무게를 회복하는 기간이다. 그 의미를 채우는 남아 있는 사순절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