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등기우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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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보명 시카고신학대 교수

 

얼마 전 시카고 영사관에서 보낸 등기우편 한 통을 받았다. 의아해 하면서 봉투를 뜯어 꺼내든 서류 첫 장엔 법률용어들이 나열돼 있었지만, 내 궁금증을 풀어줄 단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수용’이라는 단어였다. 오래 전 돌아가신 필자의 어머니 산소가 있는 공원묘지가 개발을 위해 ‘수용’ 됐다는 소식을 들은 건 몇 해 전이었다. 처음엔 죽은 사람들이 묻혀있는 땅까지 파헤쳐 아파트를 지어야 하는 현실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죽은 사람들은 얼마나 오래 묻혀 있어서 그 땅의 일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탄식도 했었다. 하지만 그 일로 인해 내가 한국 사회의 오랜 아픔인 재개발과 철거 과정의 분쟁과 갈등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게 될 줄은 몰랐다. 유가족들은 개발자들로부터 대체묘역을 약속 받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법적인 하자가 없으니 강제로 집행하기 전에 묘지를 이장하라는 협박과 동요하지 말고 버텨야 한다는 주장이 오가며 몇 년이 지났다. 그 사이 양 측의 심각한 대치 상황도 있었다. 작년 묘지를 찾았을 땐 이미 주변 건물들이 다 헐린 상태였고, 이장을 마친 빈 무덤도 상당했었다.  공원묘지 저편엔 이미 공사가 끝난 아파트 단지들도 있었다. 내가 영사관을 통해 받은 공문은 한국의 국토부에서 보낸 것으로 그 모든 상황이 끝나가고 있음을 말하고 있었다. 개발과 발전을 위해 죽은 자들이 이제 그들의 자리를 내어줄 때가 됐다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예전에도 사라질 위기에 놓인 묘지에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다. 시카고 오헤어 공항 근처 벤슨빌이란 도시에 한 교회가 소유한 작은 묘지가 있었다. 세인트 존스(St. Johannes)란 독일계 교회가 1840년대 돌아가신 교인들을 위해 마련한 교회 뒤뜰묘지였다. 1950년대 오헤어 공항이 완공되었을 때엔 묘지와의 거리가 어느 정도 떨어져 있어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오헤어 공항이 몇 번 확장을 거듭하면서 묘지의 위치는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무덤 위로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어색한 장면이 알려지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초기에는 설계를 변경해 묘지만은 살릴 수 있었지만, 90년대 말 새롭게 기획된 확장안은 묘지만이 아니라 인근 마을까지도 없애는 것이었다. 오헤어 공항이 미국에서 제일 큰 공항으로 남기 위해 새로운 활주로와 부대시설이 필요했다. 묘지를 관리하던 교회 측에선 이를 강력히 반대했고, 10년 넘게 걸린 지루한 법정 공방이 시작됐다. 내가 이런 사정을 신문을 통해 접하고, 무덤과 비행기라는 낯선 주제를 생각하며 카메라까지 챙겨들고 그 현장을 찾아 나선 건 그 공방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교회의 묘지는 실제로 활주로 옆에 있었다. 주변 마을은 이미 철거가 진행 중이었고, 묘지로 진입하는 길조차 찾기 힘들었다. 지난 해 한국의 산소를 찾아가면서 목격한 황량한 재개발의 현장은 지금은 사라진 오헤어 공항 옆 묘지를 떠올리게 했다. 무덤 뒤에 우뚝 서있는 비행기와 산소 뒤편으로 보이는 아파트 단지는 나에게 동일한 것이었다. 죽음을 딛고 세워진 개발과 발전의 상징이었지만, 또 다른 죽음을 재촉하는 행위였다. 미국에선 지속적인 개발이 생태계의 파괴와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높았고, 한국에서의 재개발이 약자들의 고통과 때로는 죽음까지 유발해 온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당시 시카고 신문에 묘지를 빼앗긴 교회 교인의 인터뷰가 기억난다. 시에서는 족보 조사까지 해서 자손들을 찾아내 통보하고 여러 가지 보상까지 해줬지만, 그는 만약 시카고 시장의 아버지가 그곳에 묻혀있었다면 이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란 아쉬움을 토로했다. 땅이 비좁은 한국에서 재개발의 문제는 오래 전부터 국가적인 논란의 대상이었다. 내가 받은 등기우편물은 그것이 더 이상 살아 있는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오헤어 공항에 인접해 있는 294번 고속도로를 차를 타고 다니면서 비행기가 다니는 아스팔트로 변해버린 교회의 묘지와 그곳에서 잠들어 있던 영혼들을 잠시나마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