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인홍 교수, 김수환 추기경 탄생 103주년 기념 ‘바보음악회’지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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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인홍교수(우)가 본지 이가희 특파원(좌)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지난 3월 9일,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에서 뜻깊은 음악회가 열렸다. ‘바보음악회’라는 이름 아래,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탄생 103주년을 기념하며, 그의 철학을 음악으로 되새기는 자리다. 김 추기경이 생전 남긴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라는 가르침처럼, 이번 음악회는 서로를 위로하고 나누는 무대가 되었다. 특히, 장애를 딛고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로 자리 잡은 ‘휠체어 탄 지휘자’ 차인홍 교수가 이끄는 오케스트라가 감동의 선율을 선사했다. 본지는 한창 연습에 집중하고 있는 그를 8일 대전시 도룡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수환추기경 탄생 103주년 기념 ‘바보음악회’ 지휘를 하고 있는 차인홍교수

음악이 가져온 기적 같은 인생
차인홍 교수에게 바이올린과의 만남은 단순한 취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는 어린 시절 대전 성세재활원에서 바이올린을 처음 접했다.
“음악은 저에게 기적 같은 선물이었습니다.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것이었지만, 저의 형편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죠. 너무나 가난했고, 부모님은 교육을 받지 못하셨고, 저는 소아마비로 인해 장애를 안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바이올린은 전혀 예상치 못한 길을 열어준 기적이었습니다.”
그 기적을 가능하게 한 사람은 강민자 선생님이었다. 서울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강 선생님은 어느 은행지점장으로 발령을 받은 남편을 따라 대전으로 내려와 살게 되면서 우연히 성세재활원을 방문했다. 아이들을 위해 음악을 가르치기로 결심한 그녀는 차 교수에게 바이올린을 처음 쥐여 주었다.
“강민자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제 인생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입니다. 그녀는 제가 음악을 만날 수 있도록 해주었고, 그것이 제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연탄창고에서 하루 10시간… 포기는 없었다
차 교수의 음악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연습할 공간조차 마땅치 않던 그는 대전 대동이라는 곳에서 살면서 연탄창고에서 하루 10시간씩 연습하며 실력을 갈고닦았다.
“방에서 연습하면 방해가 될 것 같아서 연탄창고를 연습실로 삼았습니다. 겨울이면 손이 얼어붙을 정도로 추웠어요. 잠깐 쉬면 손이 굳어버려 다시 풀기가 어려웠죠. 하지만 그곳에서 저는 한계를 극복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는 단순한 노력만으로 성공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기회가 필요했고, 도움을 받을 사람도 필요했다. 그러나 그는 직접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제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제 삶에는 언제나 저를 돕는 사람들이 나타났어요. 이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사랑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연탄창고의 기억은 지금도 그를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다. 얼마 전 50여년 지나 지인들과 그곳을 찾아갔는데 많은 낙서 중에 ‘차인홍’이라는 이름도 흐린글씨로 벽에 남아 있는 것을 보고 감격스러웠다고 했다.
“그 어려웠던 시기에 저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텨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것이 지금의 저를 만든 원동력입니다.”

장애는 나를 막을 수 없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차 교수에게 정규 교육을 받을 기회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배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검정고시를 통해 학업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결국 미국 유학을 결정했죠. 당시에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 해외에서 공부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그 도전을 감행했고, 결국 신시내티 대학, 뉴욕 시립대학교,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립대학에서 각각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에게 장애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였다.
“장애가 저를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저에게 더 강한 의지를 심어주었죠. 저는 장애가 불편할 수는 있어도, 무능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그는 지금도 장애를 가진 학생들에게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제가 이룬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면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제 삶으로 증명하고 싶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찾아온 사랑, 운명 같은 재회
차인홍 교수와 그의 아내의 이야기는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헌신과 믿음으로 완성된 특별한 인연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차 교수는 연탄창고에서 연습하며 음악에 몰두하던 나날을 보냈다. 같은 공간에서 음악을 배우던 한 여학생이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자신의 연습에 집중했지만, 차 교수에 대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차 교수는 오로지 음악에만 몰두하던 시절이었고, 사춘기적인 감정을 깊이 자각하지 못했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장애와 가난으로 신분 차이를 느꼈다고 했다. 결국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걸으며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세월이 흐르고, 차 교수는 검정고시를 거쳐 미국 유학을 떠났다. 가족의 도움 없이 독립적인 삶을 살아야 했던 그는 학업과 생계를 병행하며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순간, 과거의 인연이 다시 그의 삶에 찾아왔다.
어느 날, 작은 가방 하나만을 메고 차 교수를 찾아온 그녀. 그녀 역시 음악을 전공했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미국으로 와 차 교수와 함께하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그녀가 저를 찾아왔을 때, 솔직히 놀랐습니다. 자신의 꿈과 익숙한 환경을 뒤로하고, 오직 저를 위해 미국으로 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어요. 그때 저는 처음으로, 누군가가 저를 위해 자신의 삶을 걸 수 있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그녀는 차 교수의 장애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그를 있는 그대로 사랑했고, 그의 곁에서 함께 걸어가기로 했다. 미국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다. 차 교수는 학업과 생활고를 견뎌야 했고, 그녀 역시 안정된 삶을 포기한 채 흑인 가게에서 일을 하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며 버텼고, 함께하는 시간이 쌓이며 더욱 단단한 관계가 되었다.
“음악이 저를 세상과 연결해 주었다면, 아내는 제 삶을 따뜻하게 만들어 준 사람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통해 더욱 강해졌고, 함께하기에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차 교수에게 그녀와의 인연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이었다. 그의 음악 인생이 끊임없는 도전과 극복의 연속이었던 것처럼, 그의 사랑 또한 그러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찾아온 그녀 덕분에, 차 교수는 자신의 음악뿐만 아니라 삶까지도 더욱 깊이 있게 완성할 수 있었다.

음악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었을 것
차 교수에게 음악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다. 그것은 그의 존재 이유이자, 삶의 목적이다.
“음악이 없었다면, 저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이올린을 처음 잡던 날, 저는 새로운 세상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이 저를 이 자리까지 오게 했습니다.”
그는 음악을 통해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희망을 전하고 싶어 한다.
“음악은 단순히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졌습니다. 저는 그 힘을 통해 사람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전하고 싶어요.”
그는 특히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음악을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제 꿈은 세계 각국의 장애 아동들이 모여 오케스트라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들이 음악을 통해 자신감을 얻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음악으로 전하는 희망, 소외계층 강연과 장애 예술인 지원 활동
음악이 단순한 예술을 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삶의 방향을 밝혀주는 힘이 될 수 있을까? 차인홍 교수는 오랜 시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왔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직접 겪은 삶을 바탕으로, 음악이야말로 희망을 전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임을 증명하고 있다.
최근 차 교수는 충북 지역의 초·중·고등학교 20여 곳을 방문해 강연을 진행했다. 특히, 전교생이 9명뿐인 작은 중학교에서도 학생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학생 수가 적다고 해서 그들의 꿈까지 작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가까이 소통할 수 있어 보람이 컸어요. 음악을 통해 아이들에게 용기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차 교수의 강연은 단순한 음악 수업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역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법을 이야기한다. 충북 교육청의 관심 속에서 진행된 이번 강연은 교장 선생님들과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앞으로도 이어질 예정이다.
또한, 그는 송학중학교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하며 장애 예술인들의 활동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근 그는 대규모 공연보다는 소규모 연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장애를 가진 음악가들이 무대에 설 기회를 늘리는 데 힘쓰고 있다.
“장애를 가진 예술가들도 무대에서 당당히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기회는 점점 많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그 벽을 넘기가 쉽지 않아요. 저는 그들에게 다리가 되고 싶습니다.”
차 교수는 장애 예술계가 점점 활성화되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는 2024년 대통령상을 수상한 경험을 언급하며, 장애를 가진 예술가들이 점차 사회에서 더 많은 인정과 기회를 얻고 있음을 강조했다.
“과거에는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재능을 발견하는 것조차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이 변했고, 장애 예술인들의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어요. 음악을 통해 더 많은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차 교수의 노력은 단순한 개인적인 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더 많은 이들이 음악을 통해 꿈을 꾸고,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다. 그는 단순한 연주자가 아니라, 음악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의 강연과 장애 예술인 지원 활동은, 더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힘이 되고 있다.

나는 사랑받은 사람이다
차 교수는 자신의 삶을 ‘고생의 연속’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을 받은 인생’으로 여긴다.
“제 인생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사랑이 있었습니다. 강민자 선생님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저를 믿고 지원해 주셨습니다. 그분들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거예요. 그래서 제 인생을 ‘고생’이 아닌 ‘사랑’으로 정의하고 싶습니다.”
그가 받은 사랑을 이제는 음악을 통해 세상에 돌려주고자 한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라는 말씀처럼, 저도 받은 것을 다시 나누고 싶습니다. 그것이 이번 바보음악회에서 제가 하고 싶은 일입니다.”
그의 마지막 말은 마치 음악처럼 잔잔한 울림을 남겼다.
“포기하지 마세요. 길은 반드시 열립니다.”

차인홍교수가 ‘2025년 KBS 사랑나눔 바보음악회’에서 지휘를 하고 있다

<이가희 시카고한국일보 한국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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