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학 한국폴리텍 특성화대학 학장
‘현장’과 ‘실무’라는 나침반으로 미래를 항해하다
2025년 8월 28일, 충남 논산 한국폴리텍대학 바이오캠퍼스
가을의 문턱, 8월의 끝자락에 찾은 충남 논산의 한국폴리텍대학 바이오 캠퍼스는 묘한 긴장감과 생기로 가득했다. 캠퍼스에 만난 젊은 청춘들의 눈빛은 날카롭게 빛났고, 최첨단 실험 장비들이 늘어선 복도를 지날 때마다 느껴지는 후끈한 공기는 단순한 대학 캠퍼스가 아닌, 대한민국 바이오 산업의 미래를 잉태하는 거대한 심장부처럼 느껴졌다.
그 심장부의 중심에서 정인학 학장을 만났다. 온화한 미소와 단단한 눈빛이 교차하는 그의 얼굴에는 교육자로서의 깊은 연륜과 미래 산업을 이끄는 혁신가의 예리함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그는 단순한 지식 전달자가 아니었다. 그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산업의 지도를 그리며, 그 위를 달려갈 인재들을 길러내는 전략가이자, 꿈을 현실로 만드는 연금술사였다. 그와의 대화는 딱딱한 교육 정책에 대한 브리핑이 아니었다. 한 편의 감동적인 성장 드라마였고, 미래를 향한 담대한 선언이었다.

“취업률 87.1%, 숫자가 증명하는 ‘진짜 교육’의 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숫자로 시작됐다. 취업률 평균 87.1%, 그중에서도 정규직 취업률 93.6%라는 경이로운 수치. 학령인구 감소와 청년 실업의 그늘이 짙게 드리운 지금, 어떻게 이런 ‘취업 신화’가 가능했을까. 정인학 학장은 ‘현장’이라는 단어를 유독 강조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단순한 자부심을 넘어선 확고한 철학이 담겨 있었다.
“우리 대학 교육의 핵심은 ‘현장 친화적인 수요자 중심 교육시스템’입니다.” 그의 설명은 명쾌했다. 단순히 교과서를 외우고 학점을 이수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실제 기업에서 이루어지는 프로젝트의 전 과정을 그대로 교실로 옮겨와 학생들이 체계적으로 실무를 경험하게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소그룹 지도교수제’는 학생 한 명 한 명을 입학부터 졸업, 그리고 졸업 후 3년까지 책임지는 든든한 동반자 역할을 한다. 단순히 학생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 그들의 성장 경로 전체를 함께 설계하고 동행하는 것이다.
특히 한국폴리텍대학이 자랑하는 ‘기업전담제’는 단순한 산학협력을 뛰어넘는다. 우량 기업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여 선별하고, 교수들이 직접 기업별 네트워크를 관리하며 학생과 기업을 가장 효과적으로 연결한다. 이 정교한 시스템 덕분에 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현장에 즉시 적응할 수 있고, 기업은 맞춤형 인재를 얻는 ‘윈-윈(Win-Win)’ 구조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숫자가 증명하는 ‘진짜 교육’의 힘이었다.
“교실이 아닌 ‘산업 현장’을 옮겨오다, 국내 최초 GMP 러닝팩토리”
바이오 캠퍼스만의 특별함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정 학장의 눈빛이 한층 더 깊어졌다. 그의 대답은 ‘러닝팩토리(Learning Factory)’라는 개념으로 귀결됐다. 특히 국내 전문대학 최초로 실제 제약회사의 우수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GMP)에 맞춘 시설을 구축했다는 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강점이다.
“이곳은 단순한 교육용 실험실이 아닙니다. 실제 산업 현장의 축소판입니다. 학생들은 이곳에서 세포를 배양하고, 단백질을 정제하며, 완제품을 분석하는 전 공정을 직접 경험합니다.” 그의 말처럼, 학생들은 단편적인 지식이 아닌 산업의 전체 흐름을 몸으로 체득하고 있었다. 더 나아가 학과 간의 벽을 허물고 융합 프로젝트를 통해 복잡한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것은 기존 대학 교육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던 ‘과목별 칸막이’를 뛰어넘는 혁신적인 시도였다. AI를 중심으로 한 팀 프로젝트 방식은 학생들의 창의성과 소통 능력을 극대화하며, 인성 교육까지 아우르는 전인적 교육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었다.
“씨앗부터 틔우는 10년의 약속, 고교생과 함께 그리는 바이오의 꿈”
정인학 학장의 비전은 대학의 울타리 안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더 멀리, 더 깊게 바라보고 있었다. 바이오 산업의 미래를 이끌 인재를 키우기 위해 고교 단계에서부터 ‘씨앗’을 심고 있었다. 우수한 교수진이 직접 고등학교를 찾아가 재능기부 형태로 진로 특강을 진행하고, 인문계와 이공계, 마이스터고를 가리지 않고 모든 학생에게 바이오산업을 미리 체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그 백미는 올해로 14회째를 맞은 ‘전국 고교생 바이오 기술경진대회’다. 이것은 단순한 경연 대회가 아니다. 미래의 바이오 인재들이 한자리에 모여 실제 실험 과제를 수행하며 자신의 잠재력을 확인하고, 대학과 산업계의 전문가들로부터 직접 피드백을 받는 소통과 성장의 축제다. 정 학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고교생 체험 활동, 모의 바이오 프로젝트, 지역사회 연계 캠프 등을 더욱 활성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1, 2년 앞을 내다보는 단기적인 성과주의가 아닌, 10년, 20년 후 대한민국 바이오산업의 튼튼한 뿌리를 내리려는 그의 긴 호흡과 혜안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기술에 ‘가치’를 더하다, ESG로 피어나는 도시와 농촌의 상생”
최근 바이오캠퍼스는 사단법인 도시공동체본부와의 ESG 중심 업무협약(MOU)으로 또 한 번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기술 인재 양성이라는 대학 본연의 임무를 넘어, ESG라는 시대적 가치를 교육에 녹여내려는 담대한 시도였다. 정 학장은 ESG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필수 가치라고 단언했다.
“우리는 바이오 전문성에 ESG 가치를 결합한 융합형 인재를 길러내고자 합니다.” 이번 협약을 통해 교육과정 전반에 ESG를 적용하고, 청년층은 물론 중장년층에게까지 사회적 책무를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공동 개발할 예정이다. 더 나아가 도시와 농촌 공동체를 연결하는 바이오 기반 사업을 발굴하여 지역 균형 발전에 기여하고, 교육-산업-지역이 연계된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이는 단순히 기술자를 키우는 대학이 아닌, 기술과 가치, 교육과 사회적 책임을 아우르는 새로운 고등 교육 모델을 제시하는 혁신적인 발걸음이었다.
“단 120시간의 기적, ‘바이오 부트캠프’로 잠재력을 깨우다”
바이오 캠퍼스의 혁신적인 교육 모델이 집약된 사례가 바로 충남대학교와 함께 2년 연속 진행한 ‘바이오의약품 부트캠프’다. 교육부 지원으로 운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단기간의 집중 실무 훈련을 통해 현장형 기술 인력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바이오의약품 생산과 품질 관리 두 과정으로 나뉘어 진행된 1기 캠프는 참여 학생들로부터 “실제 산업 현장과 똑같은 교육이었다”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이는 2년 연속 선정이라는 쾌거로 이어졌다.
“우리의 교육 철학은 명확합니다. ‘현장 중심 실무 교육’입니다.” 정 학장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강의실에서 배우는 이론이 아닌, 산업 현장에서 즉시 적용 가능한 지식과 기술을 훈련시키는 것. 특히 최근 학과 개편과 함께 도입된 최첨단 고가 장비들은 학생들이 실제 기업에서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것들이다. 학생들은 모의실험 수준을 넘어 실제 공정을 다루며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고, “교과서에서만 보던 장비를 직접 다뤄보니 실무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며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기업들 역시 ‘즉시 투입 가능한 인재’에 대한 높은 기대감을 보이며, 2026년부터 본격화될 채용 연계에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벽을 허문 상생, 기업의 연구실이 곧 대학의 강의실이 되다”
바이오 캠퍼스의 힘은 내부의 혁신에만 있지 않다. 산업 현장과의 경계 없는 협력은 또 다른 성장 동력이다. 줄기세포 및 엑소좀 기술을 활용한 기능성 화장품 개발 기업 ‘엑소메디(ExoMedi)’와의 협력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는 미래 바이오산업의 핵심 기술이자 고부가가치 분야로 주목받는 영역이다.
단순히 공동 연구를 수행하는 수준을 넘어, 대학의 실습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하고, 우수 졸업예정자를 우선 채용하며, 새로운 연구 과제를 공동으로 발굴하는 실질적인 상생 모델을 구축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최신 연구 트렌드를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고, 기업은 필요한 인재를 조기에 확보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대학의 강의실이 곧 기업의 연구실이 되고, 기업의 연구실이 다시 대학의 살아있는 교육 현장이 되는, 진정한 의미의 ‘벽을 허문 상생’이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AI 날개를 단 K-바이오, 세계를 향한 담대한 비상을 꿈꾸다”
정인학 학장이 그리는 미래는 더욱 역동적이었다. 그는 스마트 팩토리, AI 데이터 기반의 품질 관리 시스템과 같은 차세대 산업 구조에 맞춘 혁신적인 교육 모델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바이오·제약 기업과의 네트워크를 강화해 기술 교류를 활성화하고, 해외 시장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교육에 반영할 계획이다.
그가 이끄는 한국폴리텍 특성화대학은 2020년 바이오(논산), 항공(사천), 반도체(안성), 로봇(영천) 캠퍼스가 하나로 통합되어 출범한 미래 산업 인재 양성의 허브다. 각 분야의 특화된 전문성을 바탕으로 시너지를 창출하며, 미래 성장 동력의 핵심 실무 인재들을 배출하고 있다. 그의 비전은 이 모든 혁신을 통해 학생들에게는 최첨단 기술과 산업 트렌드를 접할 기회를 제공하고, 기업들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바이오산업을 선도하는 인재를 키워내는 것이다.
사람이 답이다, 기술 너머의 ‘사람’을 키우는 교육
인터뷰를 마치며 시카고를 비롯한 미주 한인 동포 사회와 차세대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부탁했다. 정 학장은 따뜻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화답했다.
“빠르게 성장하는 바이오산업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이끌 중요한 분야이자, 한인 동포 사회와 차세대들에게도 무궁무진한 기회의 장이 될 것입니다. 우리 대학은 대한민국 전문대학 최초로 GMP 시설을 구축하며 산업 현장이 요구하는 실력 있고 준비된 인재를 키워내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는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 무대를 아우르는 교육을 통해 글로벌 바이오 실무 중심 대학으로 도약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담겨 있었다.
정인학 학장과의 만남은 단순한 인터뷰를 넘어 대한민국 교육의 희망을 목격하는 시간이었다. 낡은 관념의 틀을 깨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며, 오직 ‘현장’과 ‘사람’이라는 본질에 집중하는 그의 뚝심 속에서 K-바이오의 눈부신 내일을 보았다. 기술의 진화가 아무리 빨라도 결국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정인학 학장은 바로 그 ‘사람’을 키워내고 있었다. 그의 손끝에서, 그리고 바이오 캠퍼스 젊은 인재들의 빛나는 눈동자 속에서, 우리는 대한민국 교육의 새로운 미래와 세계로 뻗어 나갈 K-바이오의 힘찬 날갯짓을 본다. 그들의 담대한 항해에 아낌없는 격려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이가희 시카고한국일보 한국 특파원>